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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1/5

그래 너무 닮았구나.

맞아!

믿음이란,

볕 좋은 날, 널어 놓아 바람에 펄럭이는 빨래 같지.

 

그래 오랜 만에 다시 느껴보는 느낌이다.

필리핀에서였지.

일요일 오전이면 빨래감이 담긴 소쿠리를 안고 1층에 있는 세탁실로 갔었고,

탈수기가 고장난 날이면 손으로 빨래를 짜 손에 물집이 잡히곤 했었지.

 

바깥으로 통하는 세탁실 문을 열고 나가면 푸른 잔디 위에 빨래줄이 쭉 쳐져 있었고

부지런한 아이들의 빨래가 벌써 여기 저기서 펄럭이고 있었지.

 

내 빨래 탁탁 털어 주름을 펴고 줄에 널면서 보는 쾌창한 하늘이란 시원하기 그지 없었지.

 

아침 햇살이라 그리 강렬하지 않아 무거운 빨래 물이 뚝뚝 떨어지면

저거 언제 마르나 걱정했었지.

그러나 그 걱정은 정말 기우였을 뿐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면 정말 얼마의 시간이 자나고 나면 

거칠 것 없는 햇살은 그 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트의 물기를 어느새 거두어 바짝 마르게 해주었지.

 

오후에 빨래를 걷으러 갈 때면 햇살 가득 품어 바람에 가볍게 펄럭이는 내 빨래가 날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거둬들이던 기분은 늘 좋았지.

 

까실까실한 촉감에 엷은 단내 나는 햇살 냄새가 좋아 바짝 마른 빨래에 코를 한참을 대고

남아있는 햇살의 따끈한 여운을 더 느끼고 싶어 내 뺨에도 한참을 대고 있었지.

 

바람에 펄럭이던 빨래와 믿음...

서서히 말라가며 그 무게만큼 주름살 펴지며 점점 가벼워지는 빨래와

그 빨래에 서서히 배이는 햇살냄새.

 

오염된 빨래, 세탁, 바람에 의해 빨래줄에서의 너울거림, 가벼운 깃털이 되어버린 뽀얀 빨래.

 

그래 믿음의 모양과 너무 닮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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