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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담아온 글 ...

성전을 드러냄

아래는 히브리서 10장이다.

19 Therefore, my friends, since we have confidence to ENTER 
     the sanctuary by the BLOOD OF Jesus, 
20 by the new and living WAY that he opened for us through 
     the curtain (that is, through his FLESH),or 
      "HIS BODY" 
21 and since we have a great priest over the house of God, 
22 let us approach with a true heart in full assurance of FAITH, 
     with our HEARTS sprinkled clean from an evil conscience and 
     our BODIES washed with pure water. 
23 Let us hold fast to the confession of our HOPE without 
     wavering, for he who has PROMISED is faithful.

위에 나열한 5개의 구절들 속에는 믿음의 교리들이 
매우 농도깊게 밀집 되 있다. 

1) 예수의 몸(피와 살,몸) 이라는 의미와, 
    이 예수가 이 피와 살로, 즉, 몸으로 임재, 혹은 나타나는 장소와, 
2) 살아있는 소망이란,(희망이) 실제로 무슨 의미인지, 또 이 희망이 
    믿음의 어느 단계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3)  이 예수가 몸과 피라는 성전 기능, 혹은 권한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그 신자가,, 왜 예수가 가신 길인,,아버지 계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야하는지, 그리고,
4) 지성소까지 그 길이 왜,, 이 예수의 몸과 일치한 "그 살아있는 길" 인지,,
5) 예수의 피를 소유한 그 신자는 왜 대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이 지성소에 들어가야 하는지,
6) 이 지성소에서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어떤 종류의 제사인지,,
7) 예수의 피를 가지고 아버지 계신 지성소에 들어가는 신자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 특별한 속죄제 제사를 드려야 하는지,,, 
8) 많은 제사 중에 유독 이 속죄제 제사는 어떤 상속 권한을 의미하는지,
등등,,,
 이 많은 실제 의미들이 이 구절들 밑바탕에 농도짙게 깔려있다.

한마디 어휘로,,
오늘날 기독교가 기대하는 그 문자적 육체의 예수란, 성경에 없다.

기독교 안에서 신자가 이 예수를 문자적 육체로 마냥 기다린다면,, 
위에 나열된 성령의 길인, 성전인,, 이 예수를 받을 수 없다.

이 예수의 피(성령의 권한)와 살(성전의(몸) 기능은, 
이미 우리 신자들의 정신과 심장에 쓰여져서 보여지고 나타난 상태고,
영의 할례로 훈련받은 성전 길로써, 희생하는 길로 가야만하는 
예수의 피와 살로 찍혀져 출생된 우리 삶 자체다.

이 살아있는 길은, 죽음을 가지고는 들어 갈 수 없는 믿음의 단계에 있다.
오직 거룩한 자들만(죄와 죽음을 제거해주신 예수의 제사직 피로
이미 자신을 아담이 죄 짓기 전으로 되돌려 놓은 상태의 과정을 거친 신자)
지성소에 계신 아버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살아있는 상태의,, 
"산 제물" 인 샘이다. 아버지는 흠있는 제물, 즉 죄와 죽음으로 얼룩진 제물을
받으시지 않는다는 제사의 철칙이다.

믿음의 최종 단계란,,, 
예수가 아버지께 다가가신 그 똑같은 길이 신자 앞에
예수의 길인 제사직의 단계로 펼쳐지는 제사직 복사 과정으로 되어있다. 

이것을 진리의 지식으로, 복음으로 먼저 받아드리고 
자신 안에있는 어둠의 권한인 (더러움인,) 아담의 죄와 아담의 사망을, 
예수의 제사직들을 통해서  신자의 정신 세계와 신자의 심장 세계인, 
이 두 번째  하늘에서 싸워서 제거하고, 더 나아가, 
땅(육체로까지)으로 쫏겨 내려온 온 이 어둠의 권한(사탄과 그의 영들)을,  
영의 할례를 통해서,, 땅의 지체들인 온 갓 육체적 욕망들과 
자기 중심적 행위들로 나타나는 이 어둠들을 제압하여 이 어둠의 머리를
두 발 아래서 짓밟아 깨 부수고, 그래서 "무었이 선이고 무었이 악인지를"  
철저히 파악하여 결국,그 선악과 열매를 먹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앞에 펼쳐진 살아있는 길, 즉,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예수의 살(몸)로 된 영광의 길,, 
바로 성전이라는 이미지 길, 즉,  기능적 삶의 길을,, 
선악과 열매의 지식으로 밝아진 눈으로 보고,   

지성소까지의 길을 이 산 희망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성소라는,,,그 시대에 하나님이 특별히 조성하신 환경적 희생 상황이 
요구하는것은 예수의 피이다. 즉, 이 예수의 피를 소유하는 자만이 
휘장 안으로, 이 상황 안으로,  들어가서 
마침내 언약괘 위와 그 앞에  피를 뿌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이해하는 내 친구들은 그 길을 갈 것이다.

아담 때나, 예수 때나, 현제나, 다 똑 같은 시대적 상황들이 
출현되었고, 하나님은 이 육의 상황들을 영의 상황으로 상대하시는 
영 이시다. 

현 시대에 다시 한번,, 이 하늘의 성전이 그 희생 기능을 가동할 것이다.

현 시대에,, 어둠과 죄가 머무는 기독교 라는 하나님의 영역에,,, 
예수의 믿음의 권한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자들이 먼저 이 어둠을 밝히고 이 성전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후에,,, 많은 예언자들이 결국, 최후의 제사를 드릴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의 때를 맞이할 때에,, 
다른 큰 무리들인 제사장들도 이 지성소 안을(희생 상황)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예언자이든,, 큰 무리의 제사장이든,, 오직 하나의 길인 예수의 길,
이 "살아있는 길" "예수의 몸" 이라는 성전 기능의 길, 즉, 제사직 삶의 길 만을 가야 한다. 이 길만이 아버지께 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다.

당신 자신이 성전이요, 예수의 몸이요, 하나님 말씀 자체인 새 언약이요,
희생의 피요, 거룩한 삶인 예수의 몸의 행위요, 
이 길 끝은 하나님 자체인 그 분의 빛의 영광인 예루살렘이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 안에는 성전이 필요없다. 
마지막 열매인 "모든 민족" 의 마지막 성원이 낙원의 천국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예루살렘의 12 문 중에 하나를 통해서  
이 예루살렘으로 다 들어왔을 때 그 때에야 믿음의 끝이 올 것이다.

아담의 선악과와 생명나무,,그리고 율법, 끝으로 믿음까지도,, 
서로 같은 길, 같은 환경, 같은 이미지다.
우리는 이 길을 이미 완료된 권한인 예수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