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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山 / 함민복
푸른 山은 말이 없네
머리로 얹었던 붉은 태양
빛 힘줄 길게 늘이며
지구를 칭칭 감아 도는
난봉의 얼굴, 그래도 그리워
찬 달을 거울로 띄워 볼 뿐
습관처럼 없는 머리에
흰구름 두건 무심히 썼다 벗고도
푸른 山은 말이 없네
푸른 山에서 자란 나무들도
한때 입과 눈이었던
바람과 새와, 별과 이슬을
인연의 江에 풀어놓고
푸른 山으로 말이 없네
그 푸른 山에 목 잘린 부처가 사네
" 머리통이 떨어져 나간 돌부처는 머리 위로
무한 천공을 펼쳐 이네"
모자를 눌러 쓴 촌로의 얼굴이기도 하고
소풍 나온 학동의 몸이 되어주기도 하네
소나무가 되었다가 바람의 길이 되었다가
목 잘린 부처는 부처가 되길 원하는
세상만물을 부처로 만들어주네
제 목을 댕강 날려
만상을 我로 하고
모든 我를 他로도 하는
서늘한 설법
푸른
山
* 我: 나 아. 他 다른 사람.
선천성 그리움 /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 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 함민복 - 중에서
민들레꽃
어느 길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던 민들레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조금 과장하면 민들레꽃보다 칼 들고 쭈그려 앉은 나물꾼들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요즘 들어 민들레 채취꾼들이 부쩍 늘어났다. 또 티브이에서 민들레가 어디에 좋고 어디에 직방이라고 떠들었나보다.
산책길에 호기심이 발동해 길가나 밭두렁에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다가보았다.
곡식도 아닌 잡풀들까지 가꿔주는 부지런한 농부들인가 아니면 꽃 관찰하는 들꽃사랑 동호회 무슨님 무슨 님들인가. 쑥은 이미 세었고, 거지반 다 민들레를 뜯거나 캐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좀 솎아서 뜯어 가세요."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흔하디흔한 민들레 뭐. 씨 마르겠어요. 풀 뜯어주니까 오히려 우리한테 고맙다는 말을 해야죠."
민들레 줄어드는 게 걱정되어 한마디 던진 말에 대답이 사뭇 달랐다. 몸이 아파 약으로 쓴다든가 입맛 돋울 나물로 적당량 뜯는다고 하면 그를 탓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거기는 작년에 농약 준 자리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어디로 가면 더 많다고 가르쳐 주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욕심이다. 사람이 들어가도 남을 것 같은 검은 비닐봉지 아가리 쫙 벌려놓고 주위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 땅도 아닌데 괜히 부아가 난다.
잘코사니, 저리 욕심이 많으니까 병을 얻었지. 저리 뚱뚱하지 하는 나쁜 마음마저 일어나기도 한다.
동네 사람들은 객지 사람들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언제든지 원하면 들판에서 구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살아가야 할 땅이라 내년을 기약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네라는 개념을 좀 더 넓혀보면 우리나라 땅 전체가 동네가 될 수 도 있고 누구나 동네 사람일 텐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다......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다. 하지만 마땅히 해 야 할 일을 해낸 자세였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다.....바람에 불려가는 씨앗은 물기의 끝, 무게의 끝이었다.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이었다.........만남과 헤어짐의 속력은 같다. 씨앗 다 날려 보낸 가을 민들레가 압정처럼 박혀 있다.'
이문재 시인의 <민들레 압정>이란 시를 지면 관계상 ㅡ 시인에게는 너무 무례하지만 ㅡ 요약하여 옮겨보았다. 위의 시 는 민들레를 통해 이별과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그린 절창이다. 아름답지 않은가?
생명력 강하고 친근한 민들레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어찌 부끄러워 봄을 기다릴 수 있을까. 노란 민들레 흰 민들레, 봄을 부르는 예쁜 초인종으로 다시 촘촘 피어나길 바라며 두 손 모아본다.
/ 함민복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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