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지나온 길
먼지만 자욱하다..
양옆으로 늘어선 플라타너스 그늘이
터널 되던 곳
산골짜기에서 부는 바람이
내 등을 밀던 길이었다.
내 빨간 운동화가
뽀얀 흙먼지로 하얗게 되도록
나를 몬 것은 바람이었다..
내 안에는 늘 바람이 있었다.
잿빛 하늘
스산한 바람과 함께
내 얼굴에 떨어지는 싸릿눈은
내게 눈도 아니었다..
나는
빨래를 하고 시장을 보고
전화도 받으며
따뜻하고 밝은 공간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나를 보았다.
.
포근한 이불이 덮인 침대 위로 올라가
고양이처럼 모서리에 붙어 꿈을 꾸었다..
길 양쪽 앙상한 플라타너스 사이로
불어닥치는 바람과
흩날리는 싸릿눈을 머리에 하얗게 뒤집어쓰고
잠이 든 아이가 보였다..
침대 위에 나는
마치 그 아이가 자신의 몸인냥
추운 듯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버티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듯 싶었다.
그러나 정작 괴로운 것은
겨울 오후 앙상한 플라타너스 아래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는 육체가 아니라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걸음을 계속해야 사실이었다..
양쪽에 플라타너스가 늘어선 신작로가
늘 추운 겨울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신작로 가득 붉은 낙엽이 뒤덮여 있는 시간
내 뺨과 내 머리칼에 스치는 청량한 바람은
그 순간 잠자리 날개를 단 요졍으로 바꿔 놓았다.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람들을 만나며
두 손으로 그들과 악수하고
아무 일이 없는 듯 함께 밥을 먹으면서
나에게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듯
더운 척 겉옷을 벗어
그들이 보이는 자리에 두는 내가 보였다..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머리칼이 얼굴을 덮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동자세로
붉은 기운 내려앉아 사방이 컴컴해질 때까지 서 있는
어린 계집아이가 보였다..
바람이 내 눈을 어른거리게 했다.
내 육체 앞에 펼쳐지는 길과
내 영혼 앞에 펼쳐지는 길 모두를 ..
누가 어느 곳에 서야하는 지도
헛갈리게 만들었다.
바람은 내 눈동자 안에서 살고 있었다.
바람이 일렁이면 내 영혼이 인식하는 사물과
내 육체가 보는 사물의 상이 함께 흔들렸다..
바람은 비록
나를 이 땅에 이방인으로
또 영원히 꿈꾸는 소녀로 만들어 왔지만 ..
어쩌면
내 육체에서 자고 있는
내 영혼을 깨워내기 위한
뜻으로 그토록 나를 몰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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