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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얼굴

바보이지요.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모습이 나오는 영화 '벤허'를 보면서 

예수님 정면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TV 옆에서 보면 정면이 보일 것만 같아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속으로 나는 바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그러고 있었으니까요.

 

정말 예수님 얼굴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고,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기까지 하였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도 요한이 더더욱 부러웠습니다.  

 

제가 요한복음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의 눈에 비친

예수님이 더더욱 예수님을 잘 표현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저 인생 속에는 많은 이들의 얼굴과 감사한 수 많은 일들이 날실과 씨실처럼 엮여 있지만 

제가 육신의 죽음 앞에 서서 

이 세상에서 간직한 가장 소중한 기억을 다시 한 번 가슴에 담아 새기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얼굴과 제 평생의 눈물의 우물이 되었던 골고다의 피묻은 십자가입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제가 불의 성품을 가졌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저는 사실 불의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뚜껑이 열린 유리병 속에 가두어진 불 같습니다.

바람이 없어 불꽃이 그림처럼 가만히 타들어 가고 있는 촛불같습니다.

 

바람이 있어 내 맘대로 움직이며 타던 불에게 '동작 그만'을 요구하는 고문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의 성미를 지닌 저에게 바람없는 침묵의 시간은

사방 캄캄한 우주 속에서 누구도 의지할 수 없이 혼자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처럼 두렵기도 한 시간입니다.

 

이 침묵의 시간에 제 마음에 가만히 떠 오르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살아있는 불이 그림처럼 가만히 있는 것은 고문같은 일이고 못 견딜 일이나

이상하게 예수님과 생각도 하기 싫은 우리 주님의 고통의 십자가가 제 마음에 떠오르면 

저는 그림보다 더 완벽하게 스스로 타는 것을 멈춘 불이 되고 맙니다.  

 

저는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더더욱 영으로 부활되신 우리 예수님의 얼굴을 뵙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죽기까지 저희를 사랑하셨던 그분의 온유하신 얼굴이 안개에 가린듯 희미하여 구름같이 보이지만

그분 생각에 눈을 감고 있을 때 그분이 바람으로 스치신다면..

저는 정확하게 그분을 바로 안아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그리워하던 제 마음이 정직한 것이라면 그 간절한 그리움이 

우리 주님이 스치시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의 하늘에 우리 예수님이 샛별처럼 떠 오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면 저의 모든 생각과 저의 모든 의지와 저의 모든 마음이 온전히 우리 주님께 스스로 고정될 것이고

제 모든 호흡이 우리 주님의 호흡이 되어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이름과 은혜를 만방에 알리는

살이있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테니까요.

 

저에게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을 수 없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예수님 계시는 곳에 그분과 함께 있고 싶은 것입니다.

 

영광도 필요없고 기쁨도 행복도 목적이 아닙니다.

저희를 가장 사랑하셨던 분 옆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가 전부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가 사랑의 맹세을 하기 전에 먼저 사랑의 언약을 주셨던 그 분을 만나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확인하고 직접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것이 저에겐 가장 소중한 제 생명의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도 홀로 서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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