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서 뵌 얼굴이 아버지께서 제게 보여 주실 수 있었던 마지막 얼굴이셨지요.
그때 아버지께서 힘이 없으신 것 같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한번도 떼 놓고 살아본 적이 없는 딸아이와의 이별이 슬퍼서 그러시는 줄 알았어요.
아버지! 22년의 세월도 살아보니 잠깐이네요.
저는 치대 다니는 것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와버렸어요.
돌아와서 이듬 해에 절 많이 아껴주는 사람 만나 결혼도 했구요.
제 결혼식날 엄마가 많이 서러워하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죽음의 잠을 자고 계시지만
저는 꿈에서 아주 기억나게 여러 번을 뵈었답니다.
첫번째로는 아버지 돌아가신 날, 필리핀 우리 학교 기숙사로 절 찾아 오신 꿈에서 이었고요,
두 번째로는 제 큰아이 백일 때, 말미를 얻어 오셨다며 우리 아이 옷을 한벌 사 가지고 오셔서는
제가 좋아라 하며 아이에게 옷을 입혀 보고 있을 동안에
아버지께서는 난데없이 술을 드시고 계셨지요.
이 두 꿈은 다음 날 아침 절 펑펑 울게 만든 꿈이어서 실제로 뵌 것처럼 생생합니다.
하나는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어 울었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 흔한 현실로는 이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에 서러워서 울었던 것이지요.
그 나머지 꿈들은 도리어 마음이 편안해 종일 평안한 마음을 만들어 주었어요.
아버지 살아계실 때에는 우리집이 초라하다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린 모두 초라해졌어요.
그 때 아버지의 힘을 느꼈어요.
우리 삼남매를 그 초라해진 마음으로 결혼시켰던 엄마는 우리보다 훨신 더 많이 힘드셨지요.
그래도 동생 결혼 시킬 때까지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셨기에 그래도 다행이었어요.
이젠 엄마 혼자예요.
벌써 22년째...
엄마도 많이 강해지셨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는 눈물이 말라버렸다고 말씀하세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안 나서 부끄럽다고 하실 때,
저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그러시다는 것을 엄마는 모르시는가 보아요.
그런데 아버지! 이제는 어떻게 해요.
아버지 얼굴이 점점 희미해져가니까요.
뿌연 유리창 너머에 서 계신 것처럼 점점 더 희미해져가요.
아버지 흔적은 희미해져 가는데 아버지께 해 드릴 말씀은 많아지고 있어요.
아주 아주 기쁜 소식이예요. 아버지께선 깜짝 놀하실 일이구요.
아버지는 죽음의 잠을, 지금까지 주무셨던 것보다 훨신 더 많은 시간동안 주무셔야 할 거예요.
저는 걱정이예요. 그 많은 세월동안 아버지 얼굴이 더 더 희미해지면 어떻하지요?
오늘 아버지 얼굴을 오랫만에 떠올려 보다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아버지가 속상해서 눈물이 났어요.
친구들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시던데...
언젠가 친구 약국에 놀러갔다가 그 아이 아버지 차에서 내리시는 것보고 바로 도망나온 것 아세요?
저 편지 그만 쓸래요...
인사 안하고 그만 써도 되지요?
어짜피 아버지는 못 보실 편지일테니까요.
.....
저 못됐죠!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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