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조각
초등학교 때의 일입니다.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커다란 캔트지 몇 장을 선생님께서 가지고 오셨습니다.
물론 그날 우리들의 준비물은 크레파스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교안이 될 그림 한 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그림을 켄트지에 크게 확대하여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를 대고 몇 조각으로 잘라 아이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림의 한 조각인 작은 도화지의 밑그림을 건네받은 우리들은 도화지에 열심히 색칠을 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께서는 나눠 준 그 그림 조각들을 모으시고
잘려진 그림 조각을 테이프로 붙이셨습니다.
모아진 그림은 아주 묘한 그림이 되었습니다.
내가 색칠한 그림 조각이 그 커다란 그림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뿌듯한 마음과
우리 반 친구들의 그림 하나하나가 모여 큰 그림이 된 것에대해 우리는 하나라는 강한 소속감으로
흥분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요즈음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렸을 적 미술 시간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작은 그림 조각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전체를 이루는 많은 조각들의 일부라는 사실을
저는 늘 잊지 않으려 합니다.
어릴 적 그때 이런 기억이 어렴풋이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어떤 그림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도 하지만 어떤 그림은, 전혀 그림 같지 않은 선들의 끝자락이 되어,
꼭 잘못 그어진 선같은 것이 있는 그림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 그림 조각이 제게 받은 그림 조각이었습니다.
제 그림에는 그 선이 꼭 잘못된 것 같고 그 선이 보기 싫었습니다.
제 그림에는 어울리지 않은 선이었고 자극적인 까만 색의 필요 없어보이는 선이었지만
모아진 그림에서 그 선의 역할은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카페에 머물면서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이 여호와의 증인 정보 까페는 ,
하나님을 순결하게 섬기려는 형제 자매들의 노력이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밖에 없는 현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조직에 대한 복종으로 표현되는 현실,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이 조직의 인위적인 해설로 계속 재인식되고 있는 현실,
신권조직이 아니면서 신권조직의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두리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
그 현실들을 밝히는 아주 중요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들이 밝혀야할 중요한 일 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성서의 바른 이해의 접근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조직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왜곡되고 가려진 부분을 조사하여,
우리는 그 성서의 바른 이해로 우리 카페가 나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증인 조직에 의해 가리워진 성서 말씀은 다시 조사해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조사를 해보려는 의지가 없이 증인 조직 거짓이다라는 목소리만 키운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기 열심이 주객이 바뀌어진 상황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각의 그림은 완벽할련지는 모르나, 전체 그림과 연결되지 않는 색칠은 아무리 열심이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그림 조각의 가치는 없어질 것입니다.
그 그림 조각은 완성된 그림이 되기 위한 작은 조각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또한 해봅니다.
지금 우리는 내가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 가를 정직하게 물어보아야 할 때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지금 이시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