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는 의미는 ...
'보고 싶다는 의미는 사랑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늘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고 싶다"고 말해왔던 나의 말의 내면엔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해 오셨는지, 내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속 마음이 숨겨져 있었던 것 같다.
내 속마음의 노래는
예전엔 웅장하고 화려하고 힘있던 곳이였고 지금 현재까지 문명의 모토가 되어 주었던 도시였지만,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폐허된 도시로 남아그 웅장하던 도시의 골격만 남아 더 이상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그 고대 유적지에 앉아서,
과거의 살아있던 그 도시의 생명력을 상상해 내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내려는 안스런 아이의 황량한 바람소리 같은 노래였다.
내 속마음의 노래는
어쩌면 그분들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만 응시하며 기다리고 서 있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엇갈린 기다림처럼,
낡은 역사책에 불과한 내용에만 집착하여 붙들고 있었기에 결코 채워지지 않을 갈증의 또 다른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오래된 역사책의 색 바랜 책장처럼 더 이상 생명력이 없어져 버린 내용을 붙들고
항상 보아도 그 자리에만 있는 단순한 기록을 재차 읽는 것 처럼
있는 글 자리 확인하듯 읽음으로
생명 없는 성구들을 가슴에 끌어 안은 공허함을 이겨내기 위한 나의 구체적인 희망이었는지 모른다.
예수님의 형주에서의 대속이, 과거에 있었던 옛 성터와 같은 역사적 존재의 의미가 아니라
오늘 이 시간 나의 목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고
지금 나의 눈물로 싹이 트는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라면
그 막연한 '보고 싶음의 노래,를 공허히 더 이상 부르게 되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성서를 인생에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믿음의 선조들이 걸어왔던 행적에서 그들의 믿음을 배우고자 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화려했던 도시의 영광을 기억해 내고자 애쓰는 애쓰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주님 돌아가신 피묻은 형주의 의미의 자리에서,
돌아가셔서 삼일만에 부활하셔 우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영광스런 의미의 자리에서,
'오늘'이라는 하나님의 시간의 의미의 자리에서
햇빛에 비추어 한 글자 한 글자를 살려내어
살아있는 하나님의 시간에 서고 싶다.
그 하나님의 살아 있는 사랑 속에 거하면서,
그 사랑이 현재의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분이 보고 싶다'란 마음 가난한 노래를
더 이상 부르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주님 허락하신다면,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용광로 앞에 소멸되는 종이처럼 가벼워져
빛과 함께 하나의 빛으로 존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