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나의 친구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6. 10. 16. 18:21

내 친구들은 참 다양하다.

하나 하나가 점처럼 따로 따로이기에 친구의 그룹이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내 안에 여러 모양이 있은 것처럼 다양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네들끼리는 개성이 너무 달라 그들은 친구가 되지 못했다.

순진한 애부터 노는 애들까지, 보통 노는 애들은 순진하고 착실해 보이는 애들을 젖 비린내 난다며

쓸데 없는 우월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나에겐 그런대로 나름대로의 진실한 모습으로 대해 주었다.

공부는 별로지만 혼자 고상한 척하며 수준 있는 음악과 책을 접하는 일명 '밥맛없다'고 평을 받는 아이도 나에게는 별 견제를 하지 않고 자신의 성 안으로 받아들였다.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나와 연결된 아이들이 있으니 나의 일 아니고서 교무실로 불려 다니기도 했다 .

난 공부는 좀 하면서 인간미가 없는 애들은 딱 질색이라서 내 주변에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아이들보다 인간미가 많은 가슴이 따뜻한 아이들이 많았다.

 

고2 때 성향이 서로 다른 두  친구가 나와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그토록 극과 극을 달리는 아이들이 연결된 것이다.

한 아이는 앞서 언급한 공부는 별로지만 고상한 척은 있는 대로 다하는 아이여서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지만 스스로 먼저 아이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 아이였고,

한 아이는 수학과 과학 쪽은 항상 만점이지만 다른 과목은 평균도 안나오는 아이이며 얼마나 남자같이 생겼는지 그 아이가 생리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뒤에서 키득키득 웃을 정도의 아이였다.

어울리지 않게 감성은 얼마나 좋던지

한껏 멋을 부린 난해한 글로 쓰여진 편지를 늘 나에게 남기며 양호실에라도 가 있는 날이면 화단에서 꽃을 따다 주는 못말리는 아이였다.  

 

개성이 강해서이지 학교 생활엔 어느 누구도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었다.

어느날 센치멘탈 친구가 제안을 했다.

가을이 좋은 토요일

사복을 가지고 와서 학교 마치고 옷 갈아입고 경춘선을 타고 놀러 가자는 것이었다.

너무 환상적인 제안이라 셋은 일시에 한마음으로 동의하였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음악 좋아하는 센치멘탈 친구가 좋은 곡을 녹음해 온다고 했고

간단한 먹거리는 각자. 갈아입을 옷?

난 갈아입을 사복 부분에서 간이 졸리기 시작했다.  

당시 학생이 학교에서 사복을 갈아입고 놀러 간다는 것은 아주 노는 애들이나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겁쟁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좋다"라고 더 자신있게 말했지만 솔직히 내 행동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밤새 아무리 생각해도

교복을 입고 경춘선 기차를 타고 아이들끼리 놀러가는 것도 심장이 뛰는 일인데

'아니 사복으로 바꿔 입고 가자니...'

나로 인해 그 좋은 추억거리가 될만한 여행은 펑크나게 되었다.   

센치멘탈 친구는 "그럴 줄 알았어. 니가 누구냐?  어쩐지 무리한다 싶었어"

그 아이들에게 용기 없는 겁장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몹시도 싫고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 계획 자체가 나에겐 무리수였다.

 

고3이 되면서 부터 예민하던 센치멘탈은 더 예민해졌고

다양한 형태로 학교에서 늘 센치멘탈이 문제를 일으켰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아주 소극적인 일들로 문제를 일으켰지만 주변 사람들의 심장을 서늘하게 하는

그런 일들을 연속으로 만들어 내었다.

담임 선생님과 그 애 어머니 그리고 센티멘탈 친구 그 중심에 내가 있어 좀 고달팠지만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좋다.

한창 사춘기를 극심하게 치루던 그때 그 아이의 성에는 나만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아이 성 안에서 나는 감상적인 허영과 사치를 즐기며 갑갑하게 조여오던 어른들의 구속의 틀을 벗어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어 행복했었다. 어쩌면

그 아이의 자유분방한 행동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며 나는 사춘기를 조용히 보냈을련지도 모를 일이다.

 

한 아이는 미대로 갔고 다른 아이는 역시 과학 관련 학과에서 인정받아 미국으로 가더니 지금은 호주에 있는 대학 연구소에 있다. 

내가 본디 친구 관리를 안하는 편이라 센치멘탈 친구는 대학 다니면서 만남의 끈이 놓아졌고

과학 소년같던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 간다고 할 적에 헤어졌지만 우리 큰애 두 살 때인가 수소문해서 부산으로 찾아왔었다.

그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역시 뿔뿔이 헤어졌지만 그 친구들의 목소리가 나에겐 어제처럼 생생하다.

 

내가 약국에서 손을 놓을 즈음 그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