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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3장 주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23. 3. 17. 18:12

'형상과 글' 카페  계시록 한글주해

                                     김창호님 글

 

 

1. 또 나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 짐승은 뿔이 열 개이며 머리는 일곱이었다. 그 뿔들에는 열 개의 면류관이 있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었다.

2.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과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과 같았다. 용은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었다.

*용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준다. 이는 붉은 용이 짐승으로 하여금 어린양의 구원과 권세와 나라에 대항하여 싸우게 하려함이다. 짐승은 용처럼 뿔이 열이며 머리는 일곱이다. 용은 그 일곱 머리에 면류관을 썼으나 짐승은 그 열 뿔에 면류관을 쓰고 있다. 짐승의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다.

*용은 성령의 일곱 역사를 자기 것으로 바꾸는데 성공했고 짐승은 십일조를 자기 것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용은 귀신의 영으로 사람들에게 역사케 하고 짐승은 사람에게 십일조를 받아 부강해진다. 그는 그의 열 손가락으로 행하는 모든 일로 어린 양을 대항한다. 그의 열 손가락은 열 뿔이 되었다. 일곱 머리는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것으로 바꾼 것이므로 그 이름들은 참람되다. 짐승은 하나님께 드려질 사람의 마음을 가로채어 제 것으로 삼고 그들 위에 군림하며 그들의 열손가락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그를 위하게 한다.

*사람의 열손가락은 그 마음의 다스림을 받는다. 내가, 네가, 그가, 우리가, 너희가, 그들이 그 마음을 짐승에게 빼앗기면 나도, 너도, 그도, 우리도, 너희도, 그들도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의 무리가 된다. 누구든지 깨어있지 아니하면 이런 일은 어느 순간 그에게 일어나고 만다. 이는 짐승이 용에게 받은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그를 미혹하기 때문이다.

*여기 짐승은 다니엘서의 네 번째 짐승이다.  우리가 어린양의 네 생명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표범과 곰과 사자를 섞어놓은 네 번째 짐승에게 지배당하고 만다. 이 네 번째 짐승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 안에 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나온 것이 네 번째 우상, 청황색 말이다. 종교인은 그의 생각과 그의 길을 좇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든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정당화하는데 동원한다.

3. 그 짐승은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은 것 같았는데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았다. 그러자 온 땅이 기이하게 여기고 그 짐승을 따르고

4. 그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였다. 또 그들은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느냐"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에클레시아로 하여금 사자와 송아지와 인자와 독수리의 삶을 살게 하지만, 그 계시를 육과 생존의 양식으로 삼는 자에게는 표범과 곰과 사자를 한데 어우린 짐승의 삶을 살게 한다. 붉은 용은 어린양의 부활을 잘 알고 있으므로 짐승으로 하여금 그 부활을 흉내 낼 수 있게 한다. 이는 세상 사람들로 그와 짐승을 경배하게 하려 함이다.  

*사람들은 미가엘이 용과 싸우면서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한 것을 알기 때문에 땅에서 그를 좇는 무리들은 이 일을 흉내내어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이 짐승과 싸울 수 있느냐"하며 그 세력을 과시한다. 오늘날 큰 건물, 많은 사람, 많은 재산을 가진 종교일수록 "누가 우리와 같으냐, 누가 우리와 싸울 수 있느냐"하며 그 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목소리는 크지만 그들은 영과 생명을 버렸고, 은혜와 진리를 버렸고, 심판과 의를 버린 공허한 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새 창조의 길에서 벗어났다.

5.이 짐승에게는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고 또 그에게 마흔두 달 동안 행동할 권세가 주어졌다. 

*마흔두 달 동안 짐승은 큰 권세를 향한다. 그는 원하는 대로 행동할 권세를 받았다. 그는 마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증거 하는 것처럼 큰 말과 큰 권세를 행한다. 세상 사람들은 다 여기에 속는다. 큰 말과 참람된 말을 양식으로 삼고 여자의 씨는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하늘에서 내리는 거룩한 양식을 먹는다.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양식을 먹으며 다른 삶을 산다. 

6. 짐승은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였다.

*짐승은 무엇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장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는가. 여자의 씨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고, 그의 나라(장막)가 임해오기를 원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그 실존은 하늘에 있다. 그러나 짐승의 추종자들은 그 입으로 붉은 용을 찬양하며, 곰의 발로는 거룩한 성을 짓밟으며 표범의 신속함으로 서로 노략질을 행한다.

7. 그 짐승은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 허락되었고 또 그에게 모든 종족과 백성과 언어와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다.

*짐승이 성도를 이기는 힘은 땅에 속한 것이다. 짐승이 땅에서 성도를 이기는 것은 그의 힘으로 포학을 행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짐승에게 포학을 당하지만 포학으로 그를 대항하며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사막으로 피한다. 성도들이 짐승의 포학을 견디며 죽기까지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은 하늘의 의로 이기려 함이다. 성도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

8. 그러므로 이 땅위에 사는 사람들 중에 창세의 씨 뿌림을 좇아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자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이다.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모(창세의 씨 뿌림을 좇아서)

예수의 언행을 기록한 복음서에 이 말씀이 처음 쓰인 것을 보아서 이것은 예수 자신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번역 성경에 이 말씀이 '창세 이후로'(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또는 "세상이 창조된 이후로'(from the creation of the world)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번역들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시는 씨 뿌림의 계시가 감취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도 말씀으로 창조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말씀의 씨를 뿌리신다. '카타볼레'는 씨 뿌림이다. 그러므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는 '창세의 씨 뿌림을 좇아서' 이다. 어린양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위하여 말씀의 씨를 뿌리는데 그 씨 뿌림을 헛되게 한 자는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한다. 생명책은 씨 뿌림을 받아서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그 자신이다.

9.누구든지 귀를 가진 자는 들으라

10. 잡혀갈 사람은 잡혀갈 것이요 칼에 죽임을 당할 자는 칼에 죽임을 당하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에 있다.

*부활의 실존으로 사는 에클레시아는 사로잡혀 가든 죽임을 당하든 상관하지 아니하고 인내하며 믿음에 굳게 선다. 짐승이 성도를 바로잡고 칼로 죽이는 것은 그 믿음을 빼앗기 위해서다. 성도는 그 인내와 믿음으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11.또 나는 땅에서 올라오는 다른 짐승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어린양처럼 두 뿔을 가졌고 용처럼  말했다.

12. 그는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며 땅과 바다에 거하는 자들로 죽게 되었다가 그 상처에서 나은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13. 그가 큰 징조를 행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였다.

14. 그리고 그 짐승 앞에서 행하도록 주어진 징조를 가지고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미혹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하였다.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 왔고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다. 두 짐승은 여자의 씨를 대적하며 세상 사람들을 미혹한다. 첫째 짐승은 에클레시아의 겉 사람을 대적하고 두 번째 짐승은 그의 속사람을 대적한다.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안에 거하고 있으므로 두 짐승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과 권세에 복종케 한다.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거짓예언을 행하며 또 사람들 앞에서 큰 징조를 행한다. 

*거짓 예언자는 어린양을 흉내 내고 있다. 그는 두 뿔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를 왜곡하고 그의 영과 생명을 왜곡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한다. 땅에 속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버리고 거짓 예언자의 큰 말과 큰 징조를 좇는다.

15. 그가 또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영을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 또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였다.

*말하는 우상

모든 번역 성경이 거짓예언자가 그 우상에게 '생기를 주었다'( give breath, breathe life) 하였으나 원문은 '영'이다. 왜냐하면 말하는 우상은 특히 사람들의 영을 미혹하기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첫째 짐승은 사람의 본능을 미혹하고, 둘째 짐승은 사람의 앎을 미혹하고, 말하는 우상은 사람의 영을 미혹하게 되어 되었다. 칼에 상하였다 살아난 짐승은 칼로 사람을 죽이고, 거짓예언자는 큰 말과 큰 징조로서 사람을 죽이고, 말하는 우상은 거짓 영으로써 사람을 죽인다. 이 셋은 사람의 영과 마음과 육체를 함께 망하게 한다. 오늘날 '오직 영으로'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말이 그들 자신의 우상임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에클레시아로 하여금 그의 창조의 근원 안에서 그 영과 마음과 육체를 풍성하고 온전하게 지으신다. 

16.그는 또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다. 

카라그마(표) -  카라그마의 원뜻은 뱀에게 물린 자국을 말한다. 뱀에게 물린 자는 뱀의 독으로 죽는다. 그런즉 카라그마는 육과 생존을 지향하는 땅에 속한 자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 이마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인'으로 인침을 받은 자는 그 머리에 있는 모든 지식을 영과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그 머리에 있는 모든 지식을 육과 생존을 위한 양식으로 삼는다.

짐승의 표는 짐승에 속한 정체성이요, 어린양의 인은 어린양에 속한 정체성이다. 여기 두 뿔 가진 짐승은 어린양의 일을 모방하여 모든 사람에게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 영과 생명이 없는 짐승은 언제나 어린양의 이름을 모방한다. 짐승들은 예수의 이름을 빌어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하고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 이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짐승과 비밀하게 손을 잡은 자들이다. 그 정체성은 짐승에게 속하지 않았으나 짐승과 함께 그 열손가락으로 행하는 모든 일로 하나님의 일을 대적한다. 이것은 음녀가 나오는 배경이다. 짐승의 세력에게 압도되어 짐승과 손을 잡은 자들은 높이 들어올린 십자가 뒤에서 영적인 음행을 행한다. 겉으로는 어린양의 신부인 것 같으나 그 속은 짐승과 음행하는 음녀다.

17. 그리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했다.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나 또는 그 이름의 숫자이다.

*붉은 용이 행하는 첫 번째 일은 성령의 은혜를 거래로 바꾼 것이다. 어린양은 그의 피로 사람들을 사서 아버지께 드렸다. 그러나 짐승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예수를 사서 종으로 부리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들이 입으로는 예수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부르고 있으나 실상 예수는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붉은 용이 되어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대로(大路)를 버리고, '예수 시장'을 열어놓고 자기들 끼리 그 예수의 구원을 사고팔고 한다. 사람들은 이 시장에서 큰 자가 되고 높은 자가 되고 부자가 되고 강한 자가 되려고 밤낮 없이 거래한다. 그들의 기도와 찬송과 설교와 간증과 헌금과 봉사와 각종 행사는 예수의 구원을 사고파는 값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사가 거래이며, 음행이며, 우상숭배라고 하면 대노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우리는 너희를 유익케 하는 민족종교라 하면서 사자의 이빨을 드러내면서 으르렁거린다. 짐승이 짐승인줄 모르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18. 여기에 지혜가 필요하다. 깨닫는 마음을 가진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다.

누스(마음)

누스는 욕심의 겉마음 너머에 있는 사랑의 속마음이다. 어린양의 신부는 여기서 나오는 지혜로 산다. 그러나 짐승은 겉마음에서 나오는 지혜로 산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일을 알게 하기 위하여 666을 계시하셨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밖에서 그들의 이해력이나 통찰력이나 명민함을 통하여 아무리 계산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여전히 그 숫자에 해당하는 이름을 찾아내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계시를 읽는 자 안에 영과 생명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면 666은 알 수 없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는 자는 솔로몬이 666이라 일러 주어도 믿지 않는다. 이는 그들의 욕심이 그 해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 666의 숫자와 관련된 사람은 지혜자 솔로몬 뿐이었다. 기록되기를, "솔로몬의 세입금의 증수가 육백 육십 육 금달란트요"(왕상10: 14)하였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증수는 그가 누렸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징조한다. 성경은 분명히 그가 자기의 지혜를 좇아서 하나님의 사람에서 짐승으로 변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 사랑을 버리고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의 원형이 되었다. 그는 너무나 유명한 왕이었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웠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이스라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주셨고 또 지혜를 더하여 주셨다. 그러나 그 지혜(머리)를 가지고 그 나라(6)와 권세(6)도 영광(6)을 제 것으로 움켜쥐었다. 666은 이 일을 가리키고 있다. 나라(6)도 권세(6)도 영광(6)도 내 것(666)이 되어야 선하다 하는 겉마음의 지혜로 산 자가 솔로몬이다. 이 길은 아담 이래로 모든 인생이 걸어왔다. 이 셋은 큰 자들이 섬기는 우상이다. 사람의 겉마음에 진리가 떨어지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솔로몬의 계산법은 육과 생존을 좇는 이에게는 지혜로운 것이지만 영과 생명을 좇는 이에게는 너무 어리석은 것이다. 인간의 지혜로는 솔로몬과 같은 자 없었으나 그는 하나님의 지혜를 버리고 인간의 지혜를 좇았다. 땅에서 얻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취하려하기에 아버지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버렸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로운 사람들의 지혜를 없애고 총명한 자의 총명을 헛되게 하리라"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지혜자의 지혜를 없애고 총명한 자의 총명을 헛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