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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2. 5. 25. 07:59

당신께서는 제게 물으십니다.

너는 왜 글의 형태로 내게 기도를 하냐고요.

그래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의 질문으로 저는 커다란 한 장의 그림을 그립니다.


저는 당신의 저희를 향한 애정을 신뢰하기에

저만에 필름같은 얇고 투명한 관념 한장을 과감히 구겨버리고

도화지 중앙이 아닌 저쪽 귀퉁이에서 그림을 시작하려 합니다.


당신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질문의 답 자체를 원하시기보다 

정작 질문을 이루고 있는 본질, 당신의 저를 향한 애정의 에너지의 확산에 뜻이 있다는 것을

제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질문은 아마도 저의 영적 상태를 

저 스스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거울로 주신 것 같습니다. 


 

....

 

당신의 질문에 허접한 자기변명으로 포장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욥기서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욥기서에 자신을 투영시켜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 실수로 인한 결과를

마치 의로운 욥의 시험인냥 그리고

욥에게 돌아갔던 갑절의 당신으로 비롯된 축복을 기대하여

스스로 위로 받으려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생동감있는 당신의 말씀 38장 이후의 말씀이 좋아서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질문을 정직하게 준비하면서, 저는 욥기 1장에 제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욥기 1장이 바로 저의 영적상태의 거울이 되어 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오래전 그 기록은 오늘 이시간 당신께서 저에게 주시는 선물이 되었습니다.

바로 방법론적인 해결의 열쇠였습니다.

 

제가 정녕 당신 앞에 신실한 당신의 자녀라면,

바로 이 시점을 행동적 터닝포인트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련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는 과거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괴인간과 비슷한 존재의 저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요괴..

흐믈흐믈한 반유동체 상태에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가 또다시 자기 본질적 형태로 돌아가는 ..

하지만 늘 사람이 되고싶어 사람 가까이 머물고 사는 요괴인간..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저도 어찌할 수 없이 오늘에 이른 것 같습니다.

 

 

........

 

우스 땅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진실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일곱 아들과 세 딸이 있었으며

그의 소유는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

소 1000마리, 암나귀 500마리였다.

그리고 그는 많은 종도 거느리고 있어서 사실 동방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다.


욥의 아들들은 각자 생일이 돌아오면 

자기 집에 잔치를 베풀고 

형제들과 누이들을 모두 초대하여 함께 먹고 마시며 즐겼다.


그 잔치가 끝날 때마다 

욥은 그의 자녀들을 불러다가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자녀 수대로 불에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렸다.

이것은 그가 "혹시 내 아들들이 범죄하여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신께로부터 무한한 인정과 사랑과 축복을 받은 욥의 생활을 거울로 하여

그 앞에 서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하며, 정직하며, 그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하나님께서 악하다 여기는 것들을 멀리하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을 마주합니다.   


자비하시고 공의로우신 당신께서는 저를 좌절시키지 아니하시고 

보다 선한 영역으로 긍정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이쯤 되면 나의 원수들은 " '언제나..' 저 이의 신앙은 그저 관념 안에서 일 뿐이야.."라 

당신 앞에서 고소할 것입니다만, 오직 유일하게 저의 편에 서신 자비하신 당신께선 

동토인 이방인의 땅에 뿌려진, 겨자씨처럼 작은 생명의 씨앗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응원하시고 계십니다.


기회를 주시기'하나님당신으로 비롯된 축복과 징계와 저주 모두는 

제게 있어 크게 보면 결국 선한 영역으로 이끄는 모두 아름다운 에너지였을 가능성에

어두운 제 심장에 곧고 힘있는 한가닥의 빛줄기가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만일 제가 당하는 저만에 괴로운 고통이 있었다면 그 모두 

동토인 이방인의 땅에 뿌려진 생명의 씨앗의 잠을 깨우는 소에 의한 쟁기질 소리였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제게 무엇이 축복이고 징계고 저주로 받아들여졌던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 기준이 되었나 스스로 질문해 봅니다.

제 머리에서 무수한 날카로운 빛들이 칼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제 영혼은 아득해지고 제 발목에 걸린 포승줄이 엉키면서 제 두 발이 서로 엉켜 저는 그대로 넘어집니다.


아! .. 아버지,  

그간 저로 가슴 아프시고 속상하시고 걱정스럽고 화나셨을 

당신의 더없이 깊고 넓은 사랑 앞에 제 영혼은 아픈 눈물을 흘립니다.

 

당신의 그 깊은 사랑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 이순간까지도 저를 기뻐 춤추게도 슬퍼 자리에 눕게도 하는 실질적 힘은

원치 않게도 그리고 너무나 죄송하게도 철저히 이땅에 속해 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과 전혀 별개의 영역에서 살고 있었음을 아프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명한 유리벽을 둔 상태로 오직 상상과 생각으로서만 당신의 온기를 느끼려 애태우며 살았던 세월..

그래서 당신께 드리던 기도도 한낱 소리가 되어 튕겨나가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점차 벙어리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세월 ..

그런 세월이지만, 원수들이 고소하는 바 대로 

당신을 향한 저의 믿음과 사랑이 그리 허무하거나 관념에 속한 장난질은 아니었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걸음마를 겨우 시작한 어린아이,

한번 크게 넘어진 이후

다시는 걷지 않으려는 겁많은  어린아이 상태로 성장이 멈춰진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아! 아버지 ..

 

저는  "예수님을 안 믿을 거는 아니면서 어찌 그렇게 교회도 안 나오고 그러냐?"란 수치스런 말을 듣는

그런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아버지, 

저희 아버지 돌아가신 충격 이후로

어린아이식 당신을 향한 지식적 오해는 회복하였으나,

그때 발생했던 당신과의 실제 관계에 있어서의 거리감은 회복시키지 못한 채로

머리만 키웠나 봅니다.

 

남들이 당신 앞에서 기도할 때

저는 혼자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당신 귀에 들릴까 말까한 웅얼거림으로 기도를 대신하곤 하였습니다.

절대 상처받지 않을 거리감을 두고서 말이지요 .. 

설사, 기도가 허공에 메아리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 거리감을 바탕으로

저는 당신의 공의로우심을 내세우며 스스로 더이상의 상처는 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상처받지 아니하면서 먼 훗날을 기약하며 인내할 영역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교파를 지나면서 받았던 충격과 상처와 절대 굽힐 수 없는 성서이해로 비롯된 문제의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이 오늘의 저의 상태가 되는데 크게 기여하였고요..

 

그 모든 이유로 저는

당신의 법에서, 당신의 보호 속에서, 당신의 도우심에서, 당신의 축복에서조차

기도할 때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경계의 담벼락에서 여전히 서성대는 이가 되고 말았나 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이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도와주시면 정말 제대로 다시 시작해 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부디 당신께 가졌던 거리감이 회복되면서 

제 원수들의 고소까지 모두 걷어질 수 있길 소원합니다.

 

당신께선 알고 계십니다.

제가 당신을 제 가슴에 가득 담고 있을 때 제가 가장 행복해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신께 드리는 답글을 그림의 형태로 마치겠습니다.

저의 이 그림이 당신의 질문에 흡족한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