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십년 다이어리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0. 12. 22. 06:38

어제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십년짜리 다이어리를 손에 들고 망설였다.

값도 값이려니와 

과연 십년간 이 노트를

살아있는 내 삶의 현장 속에 둘 수 있을련지에 대해서 

그다지 자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자신없게 만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블로그에 남기는 단순한 나의 흔적들과는 형태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블로그는 매일 그려내는 무수한 그림일기 속에 묻히는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면

그 십년 다이어리는 보기에 따라서는 

한 눈에 그 그림 전체가 보여지게 되는 것이기에

스스로 전체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된다는 사실에 스스로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면 나의 전체적인 모습에서

믿음과 현실이 아직 서로 조율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쳐져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흔들리는 빛을 내고야마는 현실을 

나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녕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다 보여지고 있으나

낯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아직 들춰지지 아니한 

깊게 숨어 나의 판단과 행동의 방향을 조금씩 조정하고 있는 나의 위선의 파편들을

이제 모두 드러내 스스로 정리할 생각은 없느냐고도 물었다.

 

어쩌면 나의 위선의 파편들은 나에게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없다고? "  그럴지도 모른다. 

타고난 성격상 고의적으로 위선을 그리 많이 만들어내지는 못할지 모른다.

 

어쩌면 그 위선의 흔적은 형태를 바꾸어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애지중지해 하 왔던

내 아이들의 속옷과 겉옷과 외투와 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어깨에 내 손으로 짜서 걸쳐준 망토에

모두 숨겨져있을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나의 두 아이들의 어깨에 걸쳐있는

나의 과한 애착과 관심의 상징인 금실이 섞여 짜진 망토에

짓눈깨비를 내리게도 하시고

모래바람을 일으키시어 조금도 특별해 보이지 않게도 하시고

때로는 바람을 맞닥들이게 하시어 그 망토가 얼굴을 덮어 걸려 넘어지게도 하시고

지나가는 새로 똥을 누게도 하시어 얼룩지게도 만드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결혼 후 내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

그 아이들에게 입히려고 내가 짜왔던 그 반짝이는 별무늬 망토가

내 하나님께는 어떤 것으로 보여졌을까..

 

사실 나는 그리 낯이 두꺼워 뻔뻔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내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실 줄 알면서 계속 인간적 바벨탑을 지어올린 것은 진정코 아닐 것이다.

그런 내가 내 하나님께서 미워하실 일을 계속 해왔을 리는 만무하고..

차라리 나의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어쩌면 정립되지 못한 자아의 미성숙 단계인 

자기애의 한 표현이었기에 가능했을련지 모른다.

 

내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가히 맞설 수 있는 우상 수준으로까지 나에게 존재하여 왔었기에 

내 입에서 기도다운 기도가 흘러나오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나님 나의 아버지께서 늘 침묵해 오셨기 때문에

내가 서서히 벙어리가 되어간 것이 아니라

내가 상처를 받을 때마다 아이들에게는 그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막 옷을 지어 입히는 그 에너지가

아버지 앞에서 감히 맥을 출 수 없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

 

 

십년 다이어리 앞에서 생각지도 않게 확연히 드러나는 나의 본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구고 말 것같은 나에게 위로가 다가왔다.

 

내가 널 지켜줄 것이니 안심하고 이제 네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익숙해지라고 ..

내가 사랑하는 너를 위해, 너는 너의 하나님께 네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

 

그러나 나는

그 위로에 도리어 

멈출 수 없는 짠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