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인생들 ..
학창시절 이후로 처음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길 ..
늦가을의 정취가 아직 남아있는 나무들에 자꾸 촛점을 맞추면서 멈추려고 하시는 어머니를 재촉하며
갑자기 초라해진 노인의 모습에 당황스럽고 그래도 어린애같이 즐거워하시는 모습에 아프게 웃으면서
갓 피어오르는 꽃봉오리같은 딸을 앞세워 뮤지컬을 보러가는 길 ..
사범대학을 다니던 과외선생님을 따라 난생 처음으로 연극을 보고
소극장을 막 나왔을 때의 느낌..
건물들 사이마다 가득 내려있는 도시의 밤 ..
그 밤을 더 드러내는 네온사인의 차가운 화려한 불빛
하얀 칼라깃 사이로 사정없이 들어와 한기를 잡아넣던 늦가을의 차가운 공기
이제껏 살던 세상이 더이상 아닌 것 같았었다.
새로운 시간에 닿은 시간여행자처럼 어색하기만 하던 자신이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차차 짙은 안개를 걷고 내가 사는 마을로 걸어나오듯
본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 빛바랜 기억들이
햇빛을 받아 자기를 드러내는 보석처럼 그렇게 살아나는 것이
어제는 어찌나 어울리지 않은 감정의 조합이던지
차를 주차시켜 놓고 공연장으로 들어오는 사이의 거리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었다.
공연이 시작되었고
나는 그때서야
무대 위 인생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
빨랫감을 남긴다는 사실은 살아있다는 분명한 자기 증거였다.
말갛게 빨린 빨래를 매번 받아드는 시간.. 그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동일한 개념의 기회였다.
낯선 환경들이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바다라는 미지의 세계였다면
인간미 넘치는 땀내나는 사람들이 튼튼한 그물이 되어 건져올린
비릿한 자연내음이
내게는
밝은 달빛 아래 무지개빛 어른거리며 무수히 올라가는
크고작은 비누방울같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 되기에 충분했다.
빨래가 계속 되는 한, 우리에게 삶에 기회 역시
늘 다가오는 파도처럼 그렇게 늘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빨래는 매번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였으나
사실은 매번 빨래하는 마음, 그 마음에서, 우리의 삶은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