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0. 11. 22. 19:19

그래..

이쯤 되면

내가 괴롭기 시작할 때가 되었지.. 

 

내가 너무 과하게 말로 찔렀나 싶어

가슴이 따갑고 쓰리기 시작하면 난 정신이 아득할 정도가 된다.

 

내가 가장 못 견디는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다.

 

어렸을 때 이런 경우엔 '미안해!..'를 남발하곤 했었다..

 

그러나 예수께 속한 복음의 일에서 난 절대 그럴 수가 없다.

 

'목사'들은 정직해야 한다.

 

직업으로 목사의 신분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한 종으로서의 신분으로서 인지를, 신도들에게 분명히 한다면

나의 행동도 그에 따라 무례하게 행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오늘은 나의 고질적 질병과도 같은 '여린 심성'이 살아나

무조건 그의 입장으로서만 그를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자 내 안에 또다른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태도를 분명히 했다면 내가 그랬겠어?..

직업으로 목사의 일을 맡고 있다고 했으면 애초에

과한 기대도 하질 않았고 상처도 받지 않았을 거 아니야.."

 

믿음에 있어서 나병의 흔적을 가진 이였기에 위로가 필요하다 싶었는가?

그러다 목사의 권위로 교회를 이루는 벽돌의 하나로 틀 잡아 찍어내어

나병의 흔적을 없애려 하였는가?  

 

그냥 복음의 소식을 받아든 이방 땅

믿음의 형제로 서로 의지하며 살 수는 없겠는가? 정녕?

 

차라리 그렇다면 내가 아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상처는 상처를 부르고 .. 그것이 이땅에 순리인가 보다.

 

아주 어릴적에 팔 안쪽을 뜨거운 물에 데여 따갑고 아팠던 기억이 생생히 있어

지금까지 난 팔 안쪽에 약간의 자극에도 아주 민감한 반응을 내는 것처럼

종교에 받은 상처는 그때의 것처럼 아마도 평생 가려나 보다..

무고할지 모르는 선한 내 사람들에게 무고한 상처를 주면서..

 

그 상처 때문에 어쩌면 세상적으로는 무고할 수 있는 한 사람에게

이런 허공의 공간에서일지라도

내 속 시원하고자 어쩌면 상처를 내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양심에 찔려 그 교회에 가긴 다 틀린 것 같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직업적 목사가 없어져야 진짜 복음이 살아날련지 모른다 ..

물론 내 생각이 심히 부끄러워질 큰 예외의 많은 분들 또한 계시겠지만 ..

 

한지영..   많이 오버한다.. 아주 많이 ..

한지영.. 너 겁 먹고 있지 ..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