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잘못된 생각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0. 10. 4. 20:35
신이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막을 능력이 없다면?
그렇다면 그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은 있지만, 막을 의지가 없다면?
그렇다면 그는 사악한 존재이다.
신이 악을 막을 능력과 의지 모두를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로부터 나왔단 말인가?
신이 악을 막을 능력과 의지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왜 그를 신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에피쿠로스 (342?-270 B.C.) (그리스의 철학자)-
선과 악은 하나의 개념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여야 한다..
선이 있어 악이 악이 될 수 있고, 또 악이 있어 선이 선이 될 수 있으므로 ..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에너지를 가진 개념으로 접근해야 더 그것들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련지도 모른다.
우리 중에는 인간에 속한 그 선과 악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자율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있어
자기 의지의 표현이 되는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여야 하고
그 방식에서 비롯된 어떤 결과의 상태로 받아들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원론적 서로 독립된 영역의 문자적 선과 악 자체에 갇혀버림으로서
악을 악으로만 이해하여 그 악한 것을 이땅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원망과 책임을 돌린며 급기야 그분의 능력까지 의심을 한다는 것이다..
왜 선과 악이란 것을 애초에 있게 하여 자신들을 고통받게 만들었느냐 얼굴을 붉히면서 .. 말이다.
악이란 선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선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
선을 세우는 것은 또한 선한 에너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선한 에너지 자체이시기에
그분에게서 비롯된 것 또한 선한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밑받침 한다..
우리의 첫조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불순종의 결과와 그 파급효과를 가름할 수만 있었다면
분명 악은 선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지극히 선한 거울이 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눈이 밝아져서 당신처럼 되고자 하는 그런 의지로, 당시 법을 어긴
인류의 첫조상이 ..
당신 말씀이 곧 법인 '그것을 먹을 땐 정녕 죽으리라' 하셨던 그 진리대로
죽게 됨으로서..
그들에게는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다양한 어둠의 문들이 열려지게 된 것이었다.
법을 범하는 순간에 어둠의 에너지가 그들에게 들어와 그들을 죽게하는 다양한 길로 인도하게 된 것이었다.
노화나 질병이나 살해당함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등의 악한 에너지의 여러 갈래들이
그들을 종처럼 이끌고 부리게 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아신 신실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 어둠의 에너지를 감당할 새로운 아담 즉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보내시어
그 아들로 아담이 이루지 못한, 자신에게 주어진 법을 완전히 지켜내게 하시고,
그 한 몸에 아담의 원죄에 의한 어둠의 모든 에너지를 실으시고
그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다.
그것으로 아담이 불러들인 어둠의 에너지가 새로운 둘째 아담에 의해 상쇄되게 되어
아담의 후손들로 더이상 그 어둠의 에너지 아래 종노릇 하지 않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둘째 아담으로 이땅에 오셨던 .. 당신께 온전히 믿음을 두고 죽기까지 충성스러우셨던 예수를 ..
죽은지 삼 일만에 거룩한 영으로 부활시키시어 .. 당신의 영광 안으로 불러들이심으로 ..
그로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는 부활되어 다시 살게 하는 .. 우리들의 새로운 조상이 되게 하셨다..
즉 하나님 당신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희생을 치루어
선과 하나됨으로서 악이 무엇이 악인지를 다시 드러내게 하심으로서
아담의 범죄로 인한 왜곡된 선악의 본질을 다시 바로잡으셨고..
더이상 우리로 그 사망의 권세아래 피어나던 어둠의 권세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버리신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
에덴에서는 법이 있었고
그 법을 범함으로서 죽음이 오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의 세계가 인생들에게 펼쳐지면서
그 죽음의 세계가
원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인간들은 언젠가는 결국 죽는다는 간접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자신의 실수로 죽게 되었다..
내지는 억울하기 그지없는 갑자기 당하는 크나큰 불행으로 받아들이며 죽게 되었다.
경우야 어찌 되었든 죽음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가운데
우리는 그 죽음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다양한 불행을 철저히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통하여
그 어둠의 에너지를 다 흡수시키시고
그 독생자로 새로운 창조를 하심으로서
그분으로 이루신 거룩한 영의 새 창조의 역사를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는 이들로
그분의 후사로 그분의 유산을 나누게 하시고 그분을 통해 당신의 아들로 기꺼이 받아들여 주셨던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선한 에너지 가운데 새롭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려진 것이었다..
우리 인생들이 살면서 행할 수 있는 선이란,
그저 자기들 사이에 화평을 기쁨을 일으키는 한 편의 훈풍정도일 뿐이며
악함 또한 서로의 관계 속에서 주변을 폐허로 만드는 강한 회오리바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의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분이시어서 이땅에서 우리가 행하는 선함과 악함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으실 수 없으신 분이시다..
더더구나 인간에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선택할 자율의지를 주시어
악함으로 선함을 드러내게 하시되 악함을 선택하기 전에
선한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다면,
자신들의 악함으로 인해 생긴 모든 결과를
악함으로 선함을 드러내게 하시되 악함을 선택하기 전에
선한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미리 말씀해 주셨다면,
자신들의 악함으로 인해 생긴 모든 결과를
악 자체를 있게 하신 하나님께 다 전가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 짓는 죄이며 악이라 나는 감히 말을 한다..
진정 정직하고 겸손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다시 면밀히 재고 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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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있어 인간의 선함이란,
당신의 뜻 자체가 법이 되고 진리가 되는 상황에서
구약에서는 당신의 뜻 즉 창세기 1장에 기록된 바 대로 되는 것..
즉 땅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었고 ,
즉 땅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었고 ,
아담의 원죄이후로 죽게 된 그들의 후손들에겐
둘때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갚아버리신 원죄에서 벗어나
둘때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갚아버리신 원죄에서 벗어나
육으로는 죽고 영으로 부활하신 예수를 새로운 조상으로 한
예수의 후손으로 다시 사는 길 ..
즉 예수를 통한 새로운 창조의 과정으로 다시 살게 되는 길.. 그 길로 그 길을 가는 것만이
그분에겐 선한 것이었다..
그분에겐 선한 것이었다..
스스로 죽고자 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 말이다..
우리는 그분의 피조물이기에 우리에게 진정한 선은 그분께서 선하다 하시는 그것이 선이요.
그 선한 것이 우리에게 선하게 작용하여 그 선한 것은 진정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생들은
이제껏 '선악을 아는 데 있어 하나님과 같이 된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왔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 대로 인류의 역사에 그대로 다 드러났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진정 선한 것이 무엇이며 악한 것이 그 무엇이어 왔는지를 살펴보며
이제껏 선악을 판단하며 살아온 데 있어 모두 하나님처럼 살아왔던 그 날들을 회개하며
우리에게 진정 선한 것이란 우리를 당신의 모습과 형상대로 지으신 그분의 뜻 아래 사는 것이며 정녕 악한 것이란 그분의 뜻을 거슬러 스스로 죽고자 하는 것 이란 진리가
사람에게 온전한 선함은 애초부터 없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시각에서 각자 매번 흔들리는 선함의 잣대로 역시나 완전하지도 못한 악함을 판단하면서
화합과 확장보다는 충돌과 불화를 통한 무수한 죄만 더 양산하게 되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은
서로 이해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며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새 법이자 명령인 사랑을
바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사랑에 대해 도무지 알지 못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는 사랑의 모본을 보여주시어 우리들의 빛이요 길이 되셨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게 하는 친절과 사랑과 선한 행동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자신과 같은 인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선함을 행한다 여기며 그 댓가로 축복을 원하기도 하며
또 이땅에 팽만한 죄와 악함에 대하여 하나님께 원망을 돌리기도 한다..
이 현실은 너무도 이상한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 자체로
그 어떠한 영향도 받으실 수 없는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우주만물의 주인이시요
더할 수 없이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신 우리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우리에게 그래도 정의로움과 의로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상상할 수도 없는 은혜와 자비아래
무릎을 꿇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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