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를 읽으면서 ..
욥기서는 과거 믿음 좋은 한 인물의 기록이란 사실로만 기억 되어서는 안될 것이었습니다..
믿는 우리 모두는 제2. 제3의 욥이 되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욥의 견해를 바로잡아주셨던 아버지의 질책을 우리의 것으로도 받아들여
욥의 인내와 신실함과 함께 더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련지도요..
자식을 키워 본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지만 차마 표현도 못하고 그저 포기한듯
땅에 눈을 두고 한 발로 낙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못본척 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이라는 것 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벙어리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 마음은 더더욱 어떨 것이라는 것도 말이죠..
그것또한 야곱과 같은 강인한 믿음과 열정의 부족이 불러들인 자연스런 결과이겠지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당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는 길 아닌 길을 힘없이 걸어가는
그 모든 과정을 내내 보셔야 했던 그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믿음에 인내와 지구력 부족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양심에 비추어 무리한 욕심에 의한 바램들은 아니었지요.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바램들도 아니었지요.
빛에 의한 원근 명암의 크고 작음의 차이로 사물의 형태가 드러나게 되어있듯
제 인생은 다른 인생들보다 평범을 기준으로 해
느껴지는 원근과 명암의 차가 더 컸던 탓이었는지
아니면 섬세한 감수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소한 두 가지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켜 더 고단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지혜와 용기와 능력면에서 늘 역부족이었던 날들이었지요..
제 선택 전에 이미 선택되어진 일들과 제 선택에 의한 결과들이 서로 엮이어
제 길을 내고 있었기에
그 길에는 자책과 원망이 흔들리는 빛과 그림자처럼 드리워지고 있었지요..
저는 너무 어렸고 약했고 소심했고 용기가 없었기에
눈을 가늘게 뜨고 조심스럽게 제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면서 걸었어요.
다 보고서는 그 길을 갈 수가 없었거든요.
남들은 그 모습을 다 보고 있는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제가 만든 투명한 벽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가며
수치스럽게 혼자 판토마임 공연을 하고 있던 거였어요..
그래서 저 자신도 사랑할 수 없는 아이가 되고 만 거였죠.
어쩌면 저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 당신께 벙어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먼 훗날 당신께서 제게 인생으로 살면서 무엇이 가장 어렵더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어요.
"제게 너무도 많은 눈이 있었고 각각 그 눈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선악을 판단하고 급기야 수시로 저의 선악도 판단하기에 이르러
쉼이 없었던 것 같다고 .. 말입니다."
"그리고 완벽주의 경향으로 타인으로부터는 물론 자신에게까지
완전성을 요구하느라 도리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 말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선악과 열매의 독성이 가장 진하게 스며든 하와의 후예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가장 원초적인 죄성이 짙은 피조물이었으리라 싶습니다만 .. ^^
정말 그렇고 .. 또 그랬었죠?
씻겨주세요.. 우리 예수님의 보혈로 말갛게 ..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 아버지 손으로 흰옷을 입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