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이야기/3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의 실제 주인공 살리에르 ..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0. 9. 2. 18:56

물론 픽션 속에 설정된 인물 '살리에르'에 관한 이야기다.


자살을 시도하다 발견되어 한밤중에 정신병원으로 들것에 의해 실려가는 살리에르..

그는 외친다. "나는 보통사람들의 대변자이노라!

세상의 모든 평범한 이들이여.. 내가 너희들의 죄를 사하노라 "라고 ..


미쳐가는 살리에르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내려놓을 수 없었던

자신의 오랜 번민, 고뇌, 분노, 죄의식 그리고

그 죄의식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자아의 피흘리는 절규,

그러나 그는 본 정신으로는 그 죄의식을 감당할 수 없었나 보았다..

 

언젠가 이땅에서 나의 생을 정리해야 할 시간..

그 시간에 떠올릴 나의 그림이 된 그림 두 장이 있는데,

그 그림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천재성을 부여받고 그 천재성을 키워주는 환경 아래 살아왔던 모짤트가 아닌

살리에르적 애환을 담고 있는 그림이다..

그 그림의 공통적인 소재는 커다란 창문이다.

촛점없는 시선은 커다란 창문을 통해 허공을 삼키는 것 같은 허허로움을 불러들였다..

그 허공은 스스로를 더 작아지고 초라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지극히 살리에르의 입장에서 함께 고뇌하고 아파하는 동안

나는 살리에르의 고뇌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안개속에서 막연히 날 괴롭히던

'왜 보는 갈망만 가지게 하시고선 채울 능력과 환경은 주시지 않으시는가'

'왜 갈망마저 가지지 못한 이들과도 결국 하나가 될 수 없도록 철저히 나를 고립되게 하셨는가'라는 

이미 나의 오랜 고뇌요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살리에르라는 가상 설정의 인물이 선택한 방법이 나의 신앙의 길에서 돌아설 나의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에 고개를 흔들며

나는 오히려 그의 선택에서 나의 답을 찾아

나의 신앙적 선택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나름 선한 목적을 위해 달려온 자신의 노력이

과연 하나님 앞에 진정 올바른 것이었나?라는 아프고도 날카로운 질문 앞에

그당시 현실에서 나는 답변을 해야 했었으니까..

 

그의 기도에 함께 하였으며 그의 선해보이는 노력에 응원하였고,

그의 여리고 고운 심성에서 비롯된 겸손에 마음이 담긴 미소를 보냈으며

우월한 배경과 타고난 천재성을 가진 모짜르트의 기고만장한 태도에

함께 고통당하며 아파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자신의 이제껏 행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간 것이었다..

그의 하나님께 음악으로 영광을 돌리고 싶은 그 열정은

그의 인간적 욕심의 방향과 예능적 갈망의 한 형태였을 뿐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살리에르는 내 의식 세계 속에서 늘 살아있다.

그이를 탄생시킨 이가 따로 있겠지만 불행히도 극중 살리에르 그는 내게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사람의 시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귀하고도 한없이 연민스럽게 만드는 이였다..

 

나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지만,

그의 고뇌와 번민과 질문을 깊게 소유하였던 철저한 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