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도 / J. S. 갈로
연약함이 아닌 온유함.
격한 내적 감정을 지배하는
사랑의 힘을 가르쳐 주십시오.
자신을 잊고 이웃을 섬기며
스스로 낮추고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겸손을 가르쳐 주십시오.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온통 자기 것에만 정신이 팔려
이웃의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며,
스스로 삼갈 줄 알고
이웃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자유를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선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신뢰하며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지나치게 예민하고
감정에서 우러나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참 온유함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이웃의 작은 필요와 바람을 알아 채워주는
섬세함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악과 타협하지 말게 하시고
모든 것을 감싸고 용서하시는
주님의 관용을 배우려는 소망을
저 안에 일으켜 주십시오.
...........
아버지 !!
비록 다른 이의 기도이나
저의 기도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피해의식 속에 들어있는
양파껍질처럼 벗겨도 벗겨도 끝없이 드러나는 저의 죄들을 보며
저는 점점 힘이 빠져갑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해의식이라는 고슴도치같은 동물의 피부에 기생하고 사는 진드기같은 죄들을
낱낱이 보여주고 계시는 이는
바로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시란 생각 말입니다..
피해의식은 자아(自我)라는 유리벽에 묻은 바람의 흔적이었습니다.
자아가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를 부인하기보다 자기를 세우려는 의지가 더 강할 수 있기에
자신을 온전히 죽여 우리들을 살게하신 우리 예수님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인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피해의식은 어떤 기억에서 비롯된 결과적 현상이 아닌
저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평소 저의 믿음의 소산으로 나오는 내적 평안과는 전혀 다른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의 감정으로 인한 견재와 번민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고(思考)의 형태는 철저히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죄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합니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自我가 강하다는 것은
예수께 속한 구원의 세계로 들어오는 길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제 삶의 색이 그리 밝을 수 없었던 것은 제 성격이 음울해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죄성이 깊어 믿음의 길에서 스스로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보다 아버지께
저는 더 깊은 죄성을 드러내며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육으로는 부족한 것 하나없는 환경 속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늘 허기를 느끼며 살아왔던 저의 모습은
신의 영역에 도전한
정말 철저히 아담과 하와의 후예다운 모습이었을 테니까요..
아버지!!
그 어둡고 무거운 원죄 아래서 저를 구원하여 주세요 .
저를 가두고 있는 아담의 후손으로서의 육의 옷을 벗을 수 있도록
당신의 아드님이시며 저의 구원자시요 구원의 통로 되시는 예수의 죽음이 저의 죽음이 되게 하시어
그분의 부활 아래 저도 있게 하시어 그께서 계시는 곳에 저도 있도록
저로 그분의 피의 공로 아래 있게 해 주세요..
아.. 아버지 !!
잉크같이 검고 깊은 바다의 무게와도 같은 원죄의 세계에서
당신께 두는 믿음으로 당신께 내미는 저의 창백한 손을
당신의 사랑의 표현이시며 확증 되시는 귀하신 예수의 하얀 구원의 손으로 잡아주시어,
그 검푸른 바다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그 짜고 무거운 바닷물에 구속되지 않을
햇살처럼 밝고 새의 앞가슴 털처럼 가벼운 영의 몸을 허락해 주세요 ..
부디 그리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