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하고 날카로운 힘있는 번개처럼 ..
제가 원래 이렇지요..
준비 하는듯 마는듯 여유를 부리다가
급기야 일을 맞닥드리고 나서야 불난집 아이처럼 혼비백산하여
가진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며 온 몸으로 달려들게 되고말지요..
평안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사실 저의 심장 기저에서는
올 것이 기어이 왔다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감정이
각각의 색을 지니고 새까만 밤하늘에 불꽃놀이처럼 이리저리 터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무거운 고요와 더할 수 없는 안정감이 저를 받쳐주고 있으니까요..
이런 기분 이해하실까요..
아주 무게있는 시험지를 받아든 기분을요..
마치 대학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처럼
단원 중에 암기하여야 할 잡다한 여러가지를 제치고
그 잡다한 여러가지의 뿌리가 되는 아주 근원에 속한 간단한 질문 몇 개가 적힌
시험지를 받아든 기분이예요.
문제에 사용된 단어가 아주 간단 명료해서 쉬운 문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 문제는 다루는 그 단원의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이지요..
사진 찍는 것같은 단순암기가 안 되어 단순한 지식의 문자적 나열이 서툰 저인지라
이런 문제를 만나면 저는 사실 쾌재를 부르고
저의 두 눈에는 힘이 서서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답을 씁니다..
마치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을 굴리는 것 같습니다..
뭉쳐진 눈이 눈을 부르듯 점점 커진 눈덩이는
도리어 눈이 어떤 것이란 걸 더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답을 씁니다..
쓴 답에서 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나온 답은 처음 알고 있던 답의 연속된 답으로서
돌고 돌아 마치 굴리는 눈덩이처럼 부풀어지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부풀어지는 만큼
본디 가지고 있었던 눈의 성질과 눈의 맛과 눈의 촉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얼마나 행복해지는가를 더욱더 확연히 알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커집니다..
이제는 제 눈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눈들에게도 들어갈 정도로 점점 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들고 있는 제 손은 눈덩이가 점점 커져갈수록 점점 작아져
나중엔 점같이 되는 것이었고 그 나중엔 제 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모든 진실은 이미 우리 옆에 와있었습니다..
진실로 모든 진실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하여 먼 훗날 .. 우리는 당신께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과의 교통이 그리 아득하게 느껴졌던 것고
당신께 드리는 기도가 벙어리 기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가 당신을 지식으로만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오늘 제가 쓴 답에서 답으로 찾아내었습니다..
오늘 당신께서 내신 문제는 그걸 위한 시험이었을까요?
만일 맞다면 그것을 패스한 저에게 당신께서는 또 어떤 선하고 좋은 것을 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