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양자역학 이론 ..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 몰라 ..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10. 4. 25. 19:49

이 세상에 나 아닌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실험으로는 증명된 양자역학 이론 말이다.. 

 

양자역학으로 증명된 나이면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또다른 나는

드러나는 현실의 세계에서 쏘아내어진

드러나지 않는 어떤 세계에 드리워진 내 영혼의 그림자일지 모른다 ..

 

그 그림자를 객관적 3인칭 시점에서 보면, 

각기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삶에 자극들에 내가 선택하여 최종적으로 반응하여 내는

에너지의 형태와 모양과 색깔이 하나의 세포처럼 한 점을 이루고 그 점들이 매번 모여  

총체적인 점들로 합성되어 드러나는 어떤 모습 ..

그 모습이 어떤 하얀 여백에 드리워지는 나와 똑같은 나가 아닐까 .. 

그가 바로 내 영혼의 그림자가 아닐까 ..

 

솔직히 나에겐 그 존재가 어렴풋이 보일듯도 싶다..

어쩌면 그 존재가 내 하늘 아버지께 보여지는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

 

우리 인생에서 스스로 불러들이거나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직간접적인 고난과 기쁨들이 몰고 오는 무수한 바람들 ..

그 바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우리 영혼의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또다른 도구요 통로가 될련지도 모른다..

육체에 머물고 있는 우리 마음 속에 마음을 불러 내어 어떤 영역에 그 실체를 드러내게 하는 ..

 

인생에서  깊은 허무의 세계를 맛보았던 사람이기에

난 로또 1등 당첨보다 난 오늘 하루.. 아니 이시간에 진정한 평안을 원한다..

또 오늘 하루의 평안보다 내 생명이 시작된 그 안정된 에너지의 뜻안으로 돌아가

언제라도 그 뜻 안에서 나의 세계를 버리고 싶은 것이 바로 내 진심이다..

 

다른 전문적인 지식에 관해서도 그렇지만 과학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내 하늘 아버지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확신 때문이고

그 확신 가운데 그분의 공의로우심을 세우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기도 하다.

 

아담의 후손은 이미 아담과 함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탄은 산 존재에게 죽음을 가져다 줄 수는 있었지만 소멸을 가져올 수는 없었다.

하여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께서 아버지의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첫째 아담의 죄값 모두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담의 후손들로 원죄의 죄값에서 해방시키시어 죽음 즉 사망의 권세 아래서 자유롭게 해 주셨으며

그 사실 위에 엄청난 사랑의 역사를 펼치셨다..

그 일 이후로 피조물의 하나인 변절한 천사 사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심판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탄이 감히 알지 못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영광스러우신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들의 생명을 절대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과 ..

당신의 아들을 둘째 아담으로 인류에게 보내시어

그 아들로 인류가 감당해야 할 모든 죄값을 도말하게 하시고

그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어 당신의 우편으로 부활하게 하시어

영광스러우신 당신의 우편으로 부활시키시고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의 시작이 되게 하심으로서

인류에게 내어주신 그 귀한 구원의 선물로 인류의 구원을 펼치신 ..

온전히 구원의 통로로 삼으신 당신의 아들과 함께 그 아들로 비롯된 믿음의 자녀들을

당신의 아들을 통한 입양된 아들로 삼아 당신의 영광 안으로 함께 불러 올리실

그 사랑에 깊이와 뜨거움을 말이다..

 

인생에 부는 여러 형태의 바람들은

지상에 또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나와 같은 또 하나의 나를

드러내게 하는 수단이지

우리 영혼을 좌지우지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우주만물을 내시고 그 안에 거하는 모든 것이 있게 하신

우리들의 창조주의 피조물들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처음이자 마지막 자존심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은 아버지 뜻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어떠한 자그마한 것조차도 우리에게 선한 유익과 친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지상에 또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나와 같은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서의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우리 양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는 자기 거울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네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유신론에 먼저 근거하고

네가 말하는 양자역학에서 실험으로는 증명된 그 증명이 증명되는 영역의 땅은 어디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면 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미 누군가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일지 모르며

인식이라는 것은 형태를 가지든 가지지 않든 자체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에

인식되고 있이지도 모를 일이라고 ..

 

그리고 양자역학 이론에서 증명되는 영역의 땅은

하나님께 인식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이기에

이땅에 실제 존재하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영역이나 세계에 속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고 .. 말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혼자 중얼거린다.. 그곳은 바로 우리 양심의 영역이라고 ..

 

그리고 무신론은 이미 유신론에서 파생된

유신론이 가지는 에너지의 반대 에너지에 속한 하나의 표현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