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9. 11. 2. 01:26

공자가 주장했던가?

말을 없애자고 ..

 

만일 인간보다 고등한 생명체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최소한 말이 필요없이도 어떤 소통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카페 사람들이 나의 종일 생활을 보면 깜짝 놀랄 일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가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고 말이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닐지 모른다고 억울한 소리를 하기도 할 것이고

혹시나 어떤 이해심이 많은 사람은 저이는 홀로신앙을 워낙 오래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생활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해줄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나의 기도는 눈을 뜨고 있는 거의 모든 시간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죄인으로 서 있을 때에도 나는 가슴을 열고

사실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있기 때문인데

궁굼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라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많은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용서도 많이 구하고 싶고

바라는 것들도 많이 말씀드리고 싶고

일러바쳐 날 좀 덜 괴롭히게 해달라고 말씀드리고도 싶고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것들을 일일이 다 말씀드려

그런 일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끔 도와달라고 청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내가 미저 깨닫지 못한 나의 죄와 그것으로 인해 야기된 잘못을 알게 해 주셔서 나로 나를 조정하게 해 달라는 부탁의 말씀도 드리고 싶다..

그러나 그 많은 마음에 담긴 것을 언어란 그릇에 담아 향을 피워내기란 늘 역부족이다.

 

오늘 딸애를 등교시키고 돌아오면서 

요즘 나의 아주 민감한 '기도'의 사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가지는 ..

날 사랑하심에 있어서는 조금의 의심을 갖고 있지 않고있고

나의 바램 너머에 바램까지 다 읽고 다 해주실 말 못하시는 아버지와 단 둘이서

한 사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린 계집아이의 습관 같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디 처음부터 입을 닫고 몸짓으로 행동으로 의사소통을 해왔었겠는가..     

  

또 다른 한가지는 ..  

내가 여전히 어려서라는 것이다..

한 날에 해당되는 기도를 하고나서는

꼭 그 기도와 맞춰보게 되는 시간을 원치않게 만나게 되고

재수 좋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날엔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기도의 흔적을 보고는

마치 선물을 주실 줄 알고 막 조르다가 아버지가 끝내 아는 척도 하지 않으시고 당신일에 열중하시는 것을 보고난 아이같은 기분을 더이상 느끼고 싶지 않아서이다.

비록 유치하기는 하지만 가슴에 초겨울 흐린 날 낙엽 다 떨어진 신작로에서

막 떠나려는 버스를 향해 달려오다가 무심히 떠나버리는 버스 뒤에서 달리다 만 어중간한 자세를

내가 보는 기분은 이제 어지간 하면 피하고 싶어서 이다..

못된 생각인지는 몰라도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다른 아버지의 뜻과 방법이 있어

여전히 침묵하시며 모른척 하실 아버지를 한두번 보아왔던 것이 아닌만큼

이젠 그저 내게 있어 가장 선한 곳으로 결국 이끄시겠지..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공의로운 자연의 법칙에 내 바램을 맡기고 조용히 말 않고 사는 것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내 안에 혼란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이가 되니

알고있는 것과 행하는 것 간에 괴리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영역이 나의 현 수준보다 과하게 높다는 것이다..

오랜 신앙생활로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문제를 안고

그저 '아버지께서 도와주십사..' 그 말씀 외에는

드릴 것이 없을 정도로 지식으로만 애늙은이가 되어버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노릇이고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이땅에 속한 바램들의 간구를 뒤로하고

내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영적인 면에 속한 것으로 기도를 채우면

지금 나의 문제의식을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글을 보시고 이 블로그 주인은 사꾸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억울한 말씀은 하지 마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