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에 밟히는 얼룩진 눈물자국
그 녀석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섬세한 신경회로을 소유한 고성능 인형같았다..
밤톨같이 불필요한 살이라고는 전혀 없이 매끈한 얼굴과 몸매가 그리 보이게 했던 것 같다..
섬세하고 예민했던 아이 .. 그녀석은 다섯살이었다.
전혀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려하면서 나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지껏 살아오던 생활방식과 패턴과 문화가 아주 다른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입장에 대한 이해나 배려라는 나의 마음가짐이 기본으로 요구된 자리에서
많은 의무가 지워졌던 자리였다.
소리내어 내게 주어지는 부당함에 항거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밀가루반죽처럼 그 자리에서 요구되는 형태로 나의 모습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그 과정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간의 미묘한 감정들로 엮여진 것이기에
그 자리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들이 고개를 들고 유령처럼 살아나와
더더욱 나를 힘들게 했던 시절 ..
그때 내 자리를 가장 인정하고 있었던 이가 바로 다섯살 그 녀석이었다.
그녀석은 내가 머무는 집을 '숙모집'이라 했다.
아이가 좀 더 편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왜 숙모집이야? 삼촌집이지.. 앞으로는 삼촌집이라고 그렇게 말 해라" 라고 일어주었지만
녀석은 여전히 숙모집 숙모집 그렇게 불렀다..
할머니가 어떤 젊은 엄마들보다 더 뜨겁게 사랑해주며
살갑게 챙겨주었지만 아이는 또래들처럼 젊은 여자에게서 엄마냄새를 맡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집안에 여자들은 모두 그 아픔을 가슴에 묻고 말로 내지는 않았다.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도망쳐나와
이방인의 땅에서 나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어쩌다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날정도로 외롭게 살 던 때여서
그 아이의 아픔을 살피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었다.
고작 내 아이 이유식으로 과일즙을 먹일 때
이미 소금구이는 조금 질겨도 등심이 고소하고 맛있다 말할 정도로 이빨이 단단해진 그녀석까지
함께 앉혀놓고 떠먹이는 정도가 나의 그녀석에 대한 최대한 배려정도였다..
그녀석이 벌써 훌쩍 자라 저희 삼촌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고
더 나아가 집안에 가장 깊은 곳에서 사랑의 심지에 불을 붙여 화평과 평안의 자리에 등불을 켜 놓고
내 소울메이트 자리에서 내게 위로와 힘을 실어주는 장본인이 되었다.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라났다..
눈물을 먹고 자란 이슬같은 청년으로 내 앞에 우뚝 서 있다..
독사는 이슬을 먹고 독을 만들어내지만
젖소는 보란듯이 이슬을 먹고 이땅에 축복인 젖을 내고 있었다..
그 녀석에게 지혜는 자신이 거하는 땅을 풍요롭게 하는 젖이 되어
화해와 화평과 평안과 기쁨의 땅으로 가꾸어가고 있었다..
나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 주변이 옥토로 변해가는 것이 그저 세월 탓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모든 진실은 그 진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 그렇게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그 녀석의 얼룩진 눈물자국이 자꾸 밟힌다..
지적이고 이성적인 반듯한 외모와 성실하기 그지없는 생활태도.. 그리고 섬세한 배려의 마음 ..
그 녀석을 보는 사람마다 부러움과 감탄과 칭찬이 쏟아내지만 ..
어쩐 일인지 난 그녀석의 뒷모습이 시리다..
그녀석은 모른다.
내가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
그토록 그리워하고 원망했을 제 어머니의 자리 바로 옆자리에 서 있는 나무인 내가
내 바로 앞에서 어린 나무로 자라고 있는
저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