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픔들 ..
우린 같은 나이였다..
우린 한 배에서 난 형제에게서 각각 시작된 생명으로
한 이는 겨울 야산 공터에서 반 얼다가 모질게 살아난 민들레처럼 강인한 어머니를 통하여
세상을 보았고 ..
다른 한 이는 온실속 살지 죽을지가 의문스러워 애만 태우게 하는 가녀린 화초같은 어머니를 통하여
세상을 보았다..
한 형제간이라도 그리도 다를 수 있는 것인가 ..
겨울철 혹한에서 살아남아 노오란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여인에게는
그녀가 감당할만한 고통의 무게를 예비하고 있는 아우를 남편으로 만났고 ..
너무도 여려 결혼하여도 늘 부모의 애를 태워야 했던 여리디 여린 여인에게는 그에 맞는
고상하고 예민하기까지한 이지적이고 감성적인 형을 남편으로 만났다..
그렇게 너무도 다른 부모 사이에서 ..
내 사촌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내 사촌이 몇 달 앞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빠가 되었고
난 동생이 되었다..
오빠도 아닌 것이 .. 친구도 아닌 것이 .. 늘 어중간 했다.
다 커서 서로 결혼하고 나서 만나기 전까지는
어른들 안 보는데서는 난 늘 반말에 이름을 불렀다..
고질적인 문제를 지닌 오빠네 집은 늘 우리집에 부담을 주었기에
방학 때마다 올라오는 그 오빠에게 그리 살갑게 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꼭 예민한 고양이같은 나에게 필요없이 참견하고 자꾸 건드린다는 거였다.
꼭 어디라도 갈라치면 언제나 보이코트해 준다고 따라나섰다..
이성에 관심이 눈뜨던 시절 ..
그때는 전혀 멋지지 않아 보이는 그 오빠가 꼭 내 남자친구처럼 옆에 붙어다니는 게 ..
난 진짜 자존심 상하고 싫었었다.
지금 사진을 보면 조금도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는데 ..
그 오빠 눈에는 제 사촌누이가 예뻐보였는지
내 사진을 몰래 가져다가 제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안방 문 위에 걸려있는 액자에 그 사진들을 넣어 두었다고
나중에야 전해들었다..
그 순박한 사촌의 마음과
그도 태어나면서 어쩔 수없이 부여받았던 가난과
황무지같은 곳에서의 고단한 삶 속에서의 마찰들을
진정 가슴으로 아프게 인식하게 되었을 때는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을 보내고 나서였다 ..
그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내 사촌 오빠는 죽었다 ..
내가 아직 못 값은 마음의 빚을 여전히 많이 남겨두고서 ....
영원한 내 아픔의 존재가 되어버린 그 오빠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어 놓은지
벌써 6년이 넘어섰다 ..
어제 전화를 받았다.
죽은 오빠의 아내 .. 12살 연하의 어린 올케언니가 자궁을 들어내는 큰 수술을 받았다 했다..
성실하고 자상하던 아버지같은 남편 그늘 아래서 화초같이 살던 올케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더니만 ..
남편이 그리운 밤시간이면 무조건 차를 몰고나가
정처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잠이 올 시간이 되어야 쓰러져 잠이 든다고 하더니만 ..
참으로 많은 생각이 교차되어 어젯밤에는 영 잠이 오질 않았다..
서울에 다녀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