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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바닷가에서 ..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9. 1. 18. 11:26

서러운 바닷가입니다.

 

재색 하늘 .. 재색 비가 .. 바닷물을 재색으로 만들어 

온통 죽음의 색으로 다가왔습니다.

 

재색 서늘한 바람이 이미 구멍난 가슴으로 들이쳐

심장을 서늘히 식어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의 평범한 날에 철저히 자신의 영역을 드러내지 않던 

영토가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그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미지의 땅 雪國은

저로 제 인식 속에 있는

황량한 시베리아 눈 덮힌 벌판으로 내 몰고 말았습니다.  

 

온통 하얀 세상 ..

저는 그곳에서 雪盲이 되어

기억 속 눈에 보이는 세상과 현실로 엄연히 존재하나 보이지 않는 세상을

함께 보며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철길 옆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숨가쁜 호흡으로 기적소리를 남기며 달려 나가는 열차의 여운에 

그 철길이 한없이 길게 이어져 있음을 느낍니다.

 

내 어설픈 걸음으로 얼마나 오래 걸어야 다음 역사에 도착할 지가 느껴져

까마득한 현기증에 쓰러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은 이미 저를 지배하는 감각의 범위를 벗어났고 

나른하게 다가오는 졸음 속에

아득한 영상처럼 나의 가벼운 약속들이 나비처럼 날기 시작합니다. 

기억속 퇴적층 속에서 저의 약속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나비 하나가 날 때마다 그때의 맹세가 나비의 몸을 빌어 날아 다닙니다.

그 나비는 허무한 연기처럼 허공 속에서 사라져버립니다..

무수히 많은 나비가 하늘을 채웠고 끝없이 연기로 화하여 사라져갔습니다.

 

내가 했던 모든 약속들이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한 채 

허무한 언어라는 나비의 옷을 입고 바람을 타고 날다가

마침내 연기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그 허망한 나비들이 날아오르기 시작된 곳은

죽음이라는 문패를 단 재로 된 무덤이었습니다.

 

나비들은 무덤에서 피어올린 꿈이었습니다. 

 

묻어달라 부탁했습니다.

그 재색 하늘 밑 .. 재색 비를 맞고 있는 ..

재색 침묵의 바다에게 .. 

죽음이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재로 된 무덤안에 갇힌 주검을

함께 장사 지내달라 부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