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내 아픈 사랑들 ..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8. 11. 10. 20:09

사내아이 둘을 가진

애엄마가 되어 나타났다.

나이 스무살도 넘는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남자와 함께 .. 

 

그녀 나이 스물 넷 .. 

 

그리고 남자는 떠났다.

 

이혼을 했단다 ..

그 남자가 남긴 카드빚이 4천만원을 떠안고 .. 

 

 

 

그때 .. 한번 씩 그랬었다.

수박이 열댓 개씩 트럭 아래에 깨져있곤 했었다.

아니 어떤 날은 팔다 남은 수박 거의가 다 박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간밤에 성질을 더럽게 내고 난 흔적이었다.

이른 아침에 때로는 그 트럭 뒤에서 그집 식구 한 사람이 내려오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집에서 자지도 못하고 트럭 위에서 잠을 청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평소에 아주 성실했다.

그러나 한번 씩 무슨 일로 성질이 나면 그리도 난폭해졌던 것이다.

 

어쩔 때는 개 잡는 소리가 나서 그 소리 나는 쪽으로 문을 열고보면 

트럭에 매어 놓고 키우는 백구가 심하게 얻어 맞고 있기도 했다.

 

얼마 후 ..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난 그때 .. 안타까운 생각은 커녕

이제서야 저 집 식구들이 다리 펴고 살겠다 싶었다.

 

그래도 가족인지라  가장을 잃은 슬픔이 그리 가볍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식구대로 핼쓱해지고 힘없이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난 그녀가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그녀의 부모에 대해서 뒷담을 늘어 놓았지만 

포기가 빠른 나는 ..

어짜피 공부가 기초도 되어 있지 않을거라면

어쩌면 저렇게 성실하게 장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착실한 딸이었다.

그녀 위의 오빠도 공부는 안 했지만 아주 성실하고 착했다.

그렇게 그렇게 오붓하게 열심히 잘 산다 싶었던 어느날 ..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택시기사가 그녀를 꼬아 데려갔다는 거였다.

...

 

남의 일이라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

텔레비젼에 시골에서 아이 낳고 사는 그녀가 방송에 나왔다는 이야기로

동네가 들썩했다.

남편이 밥도 반찬도 만들어 주고 .. 아주 잘 해 준다 했다.

 

방송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는지

아이 업은 그녀가 동네에 보이기 시작했다.

살도 쏙 빠지고 핏기도 웃음기도 하나 없이 ..

 

그리고 남편 되는 사람도 보였다.

포터 하나를 사 가지고 과일장사를 제대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달만에 들리는 소식이

이혼 .. 그리고 그 남자가 남긴 사내아이 둘과 빚 4천만원이다 ..   

 

 

세상이 어찌 이다지도 공평치 않을 수가 있는지 ..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낯선 남자를 따라간 그녀를 난 탓할 수만은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 분별력이나 지혜를 배우기가 어디 쉽단 말인가 ..  

 

사랑과 자유에 굶주린 아이에게 건네지는 달콤한 유혹의 비중은 결코

평범한 이들의 동등한 조건에서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빛은 빛을 낳고 어둠은 어둠을 낳는 것 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난 이제 이런 기막힌 상황도 그리 난리칠 정도로 그리 낯설지 않다.

 

언젠가 우리 아들아이가 데려온 천막집 아이 ..

오랜 지병으로 누워있던 엄마가 숨을 거두는 시간에

그 엄마가 시켜 준 맥시칸 치킨을 먹고 있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시켜 준 통닭을 맛나게 먹고 있는 아들아이를 보면서

서서히 눈을 감아야 하는 어미의 심정 ..

 

그녀는 시도때도 없이 길가다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오줌을 누었다.

십 년 전 쯤의 일이기도 하지만 .. 이 동네가 본디 철거민들이 이주해 와 형성된 동네라

도심지보다 많이 열악한 환경이기에 

손가락질을 당해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 싶었다.

당뇨 합병증이 아주 심해 방광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고통엔 관심없고

"저 여편네 또 치마 걷고 눈다.."며 얼마나 흉을 보았던가 ..

 

아주 오래 전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

우리 아이가 형이라 불렀으니 지금 쯤 

직장인이든지 대학생이든지 군복무 중에 있을 나아가 되었을 것이다. 

 

남편을 따라 이 곳에 온 지도 이십이 년째 ..

이제 이곳도 나의 이야기가 아주 낯설다.

 

나는 간접 경험으로 보고 들어와서 .. 고생을 많이 해 본 어른들 처럼

상황이 아주 고약해도 인생살이에서 언제든 가능한 일이라 여기고 있으나..

고생을 하지 않고 산 이들이나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 거짓말 같은 옛날 이야기가 될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이런 힘든 이웃들이 늘 주변에 있어

이 땅에서의 삶이 절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싶다.

 

내가 물욕이 별로 없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 이런 가슴아픈 이웃들이 처절하게 인생을 살면서 내는 신음소리 거름 덕택이다 ..

 

난 그들이 빛으로 나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 빛에서 그들을 감싸고 있는 어둠을

하루 빨리 .. 철저하게 ..  끊어내길 간절히 소망한다.

 

미소가 깨끗한 그들 ..

작은 것에도 정말 고마워하는 마음 가난한 그들이 걱정없이 ..

행복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