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이 없는 .. 반 보의 걸음 차이.
한 번씩 찰라적 판단에
내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난 지금도 그 순간적 판단의 오류가 동물적 본능의 이기심에 의한 것이란 생각에
나의 양심이 본질적으로 섬세하지 못하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내 이성은 본질적 이기심보다는 늘 반 보 늦다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그 반보의 이기심.. 난 그 반보가 아주 갑갑하고 불편하다.
그것을 제대로 느끼고 고민한 지
22 년이 넘은 지금에도 그 반 보가 여전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2 년 전 ..
그 날의 일은 양심적으로 계속 걸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였다.
교대로 외할아버지를 간병하고 있을 적 일이었다.
할아버지 옆 침상은 무슨 병이었는지는 몰라도 복수가 차 올라
한 모금의 물도 허락되지 않는 오십 대 초반의 아주머니 환자였었다.
시간은 새벽 3시 반경 ..
할어버지 침대에 기대어 자고 있던 내가
인기척에 반 눈을 떴을 때에는
그 아주머니가 무엇인가를 들고 입에 대고 있었다.
스텐레이스로 된 사각 쟁반에 수액제 용구들과 소독솜 ?
뭐 그런 것이 담겨져 있는 병원기기였었다.
약간의 물이 그 용기에 담겨있다는 판단이 되었다.
내가 눈을 뜨고 그분이 무엇인가를 마신다고 인식되고
한 모금의 물도 허용되지 않는 환자라는 판단과 함께 ..
이미 마셨다라는 포기가
나를 죽음같은 잠 속으로 다시 빠져들게 하고 말았다.
몇 시간 후 ..
간호사와 의사들의 발걸음이 어수선히 빨라졌고
정오가 되기 전에 그 아주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나의 내면에 큰 소송이 일어났다.
내가 목격한 시각과 그녀가 그것을 마신 시각..
그리고 내가 포기하고 다시 엎드린 시각 ..
'이미 늦었다라고 생각했던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이었나?'란
스스로의 질문에 솔직히 50: 50이었다.
그러나 .. 내 양심은 비웃으며
그 소송 자체를 다루지 않았다.
"네 가족이라면 늦었건 늦지 않았건 달려가 뺏었을 것이다"
그 양심의 소리는 너무도 살벌한 칼같은 것이어서 어떤 지저분한 다른 변명을 일축해버렸다.
그 후로 난 ..
인간애에 관한한 여러 주장에서 아주 초라해졌다.
오늘 오전 ..
가을 아침햇살을 받으며 발코니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호수가 딸려가지 않는 곳이어서 바가지로 물을 담아 퍼붇던 중 ..
바닥 가까이 벽면에 꿀벌 한 마리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찰라적으로 오른손은 바가지에 힘이 들어갔고 물이 쏟아졌다.
해일을 만난 것과 같은 벌은 그 물살에 딸려 내려가고 있었다.
아차 싶어 눈이 따라갔고 손으로 물길을 막아 다른 쪽으로 보냈다.
제 몸 바닥의 물에 날개는 젖었고 ..
뒤집어진 몸으로 안간힘을 다해 바로 서 보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손으로 세워주려다 인간의 손이 더 치명적이겠다 싶어
주변의 물기를 없애주면서 손가락을 가만히 대어주니
다행히 내 손가락을 의지하여 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람과 햇빛에 날개를 말리라고 창문 쪽에 손을 대고 있으니
어느새 날개는 말라 두 날개를 폈고
몸통에 솜털이 어느새 말랐는지 뽀송뽀송 해지고
각각의 발을 서로 비벼 말리고 있었다.
제일 뒷발을 걱정했으나 다행히 모두 온전했다..
호박씨 말리는 곳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가
준비하고 집을 나오는 시간에 들여다 보니
조금씩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를 타고 나오면서 또 다시 그 옛날의 소송이 생각났다.
보고 나서 괜찮다 신호를 받고 다른 손으로 물 바가지를 부었는지 ..
성능 떨어진 고물 타자기의 서로 엉킨 상태인지 ..
또 50: 50이다.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