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해진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
시이모님께서 부산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저녁시간에 어머님댁에 다녀왔었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아버님들이 모두 1.4 후퇴 때 월남 하셨기에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모두 양가 어머니쪽 친척이어서
평소에도 시이모님이 내려오셨다 하면 ..
시댁에서는 가장 윗어른을 맞는 마음이 된다.
몇 년전 위암 수술을 받으시더니 이번엔 담낭을 절개하셨다 한다..
평탄치 않았던 인생이지만 ..
늘 그리스도인답게 평온한 자세를 잃지 않으셨던 이모님이고 ..
인생에 용감하고 닥치는 어려움에 도전적이셨던 우리 어머님과는 달리
인생에서 만나는 파고를 기도와 인내로 견뎌내셔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
존경하는 마음과 애틋한 마음을 늘 함께 가지고 바라보아 왔던 이모님이셨다.
이젠 아버님도 계시지 않아 ..
윗어른이라야 어머님과 이모님 두 분이 전부이라서
어쩌면 그리 멀지 않는 시간에 또 집안의 한 어른을 떠나보내야 할지 모른다 생각하니
건강조심하라고 안아주시는 그 포옹이 그리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좀 오래 버텨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 하니..
어머님께서 날 좀 보자고 하셨다.
뜻밖에 어머님 손으로 ..
내 어께에 걸려있었던 보이지 않는 무거운 짐을 내려주시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명절과 제사 때마다..
짓누르던 내 마음의 짐을 내려주시는 것이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어머님께 대한 감사함과 함께 ..
명절과 제사 때만 되면 나를 괴롭게 짓누르던 그 무거운 짐에서 자유롭게 해 주시는
내 하늘 아버지에 대한 은혜가 번개처럼 내 온 몸을 휘두르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예수 믿는 네가 ..
시집와서 근 이십 년동안 우리집을 위해서 그리 살아주었으면
너도 할만큼은 다 한게다..
이제 그 일에서는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라 .."
사실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 사람과의 평화를 더 중하게 여겨서인지 ..
그것 모두 섞인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지만 ..
제사의 행사 모두의 간접적 주체가 되어왔았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이 되고서
그 행위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로서는 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분명한 이유를 가지게 됨으로써 ..
앞으로 일체의 제사에 관한한 모든 것에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을 어른들께 전하였었다.
그 뒤를 따르던 거센바람은 ... ㅎㅎ
모두 내 몫이었다..
그 이후로 제사를 절에다 모셨다가
아버님 돌아가시고 아버지 제삿밥을 절에서 드리게 할 수 없다시며
어머니께서 그 제사를 다시 모셔왔었고 ..
증인조직을 나오고나서 ..
믿음적인 측면에서 더 여러 발 나아가게 되고
더 확고한 믿음을 소유하게된 나는
믿음생활의 형태를 더 철저히 고수하게 되었다..
그러하였기에 ..
명절날 가족들이 먹을 음식준비나
평소 식구들에게 더한 관심과 애정의 표현은 더 필요하게 되었다.
시댁식구들은 고맙게도 ..마음은 그리 좋지는 않겠지만..
그 모든 일들이 나의 굳건한 그리스도인 믿음에 의한 것이라 여겨주고
불편한 심기는 스스로 해결하고서
가족들간의 평온한 관계를 유지해 주었다.
문제는 내가 많이 괴로웠다는 것이었다.
사실 보이지 않는 큰 짐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
어머니께서 내 보이지 않는 그 짐을
당신 손으로 내려주시는 것이었다.
"너는 이제 내가 의지하는 든든한 자식이니 ..
그런 부담감에서 완전히 자유로워도 된다고 ..
명절날 음식 해 보내는 것도
간단히 보내도 된다고 ..
지금처럼 그렇게 든든한 자식으로 있어주면 되는 것이라고 ..
기어코 제사를 다시 가져와 네게 부담을 주어서 미안하다고.. "
돌아오는 길에
이제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우리 예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온전한 내 여행이 시작된 여명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내가 가야하는 길에
늘 숙제로 있었던 며느리로서의 자리가 해결되는 날이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 정말 꿈같은 일이고 ..
어제는 ..
내게 날개가 달리는 특별한 날이 되었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