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형태의 바벨탑 쌓기
난 한때 깊은 슬픈 의문의 늪에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선 당신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왜 더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들도록 허락하시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그냥 의문에 불과한 것이지..
혹여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관심하시거나 몰인정하시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무슨 이유가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고 있을까란 질문이 내 가슴에 절실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당시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인식하고 있던 터여서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혹은 사도들이 그 당시 믿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하던 말씀을
시대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던 나에게..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생선을 주지 않고 뱀을 주겠느냐?
또 계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하더라도 좋은 것을 자녀에게 주려고 한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간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누가복음의 말씀은 오히려 더 공허한 허공속 울림소리가 되어 괴로움이 되었다.
굶주림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의 손에 들린 ..
내칠 수도 .. 손에 쥘 수도 없는 .. 뜨거운 감자!
그 뜨거운 감자가 그 성구였다.
그때로부터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새는 날아야 했었다.
그러나 내 주변의 새들은 걷고 있었다.
날 수 없는 늙은 새들은 파란 하늘 구름 속에 다다르기 위하여 ..
땅에서 나뭇가지를 물어다 탑을 쌓고 있었다.
어린 새들은 하늘에 닿는 탑을 계획하고 그 탑을 세우고 있는 늙은 새들에게 믿음을 두었고 ..
자신들의 눈을 들어 하늘에 닿아 보이는 가장 높게 세워진 탑을 선택하여
걸어서 그 탑을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눈을 땅에 대고 거꾸로 하늘을 보아
그 탑이 꼭 하늘에 닿아 있는 것으로 착각한 어린 새들은
탑은 하늘에 도저히 다다를 수 없다는 것과
그 탑들의 꼭대기에서는 계속 지어지는 공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새들은 날아야 했었다.
그러나 어린 새들은 걷고 있었다.
바람은 언제나 그렇듯 불고 있었다.
그들의 날개 아래 바람이 되어 ..
그들로 높은 하늘 위까지 이르게 할 수 있는 진짜 바람은 불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새들은 그 바람은 그냥 늘 함께하여 오던 자연일 뿐으로만 여겨 ..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갈 수 있는 눈 앞에 있는 탑을 찾기에 바빴고
가장 높이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그 탑이야말로 진짜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확신하며
자신의 걸음이 땅에서 멀어질수록 성취감을 느끼며 땀 흘려 노력한만큼 하늘에 가까워졌다는 기쁨을 가지고
자신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또 많은 세월이 흘러..
난 드디어 하나님께 가졌던 모든 슬픈 의문들을 접게 되었다.
만일 ..
해결하지 못할 또 다른 의문이 앞으로 생긴다 하더라도 ..
그것은 더 이상 의문이 아니라 유추하여 답을 찾아 낼 수 있는 ..
그래서 확고한 믿음을 더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게 하였다.
마치 커다란 산에 구름이 끼어 산 허리가 잘려 보이더라도 ..
그 구름 뒤로 산은 분명 존재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믿음의 세계에서의 시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그 세계에서의 청각은 오직 그분께로부터 오는 성령을 통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믿음의 세계에서는 ..
더더욱 우리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아 확인하려 하는 노력이 오히려 인간적인 악한 계획을 부추키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보아 확신하려는 믿음의 부족이 오히려 악한 영의 개입을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교회조직의 유지 발전을 위해
눈에 보이는 형체인 조직교리와 교회 성장의 목표란 암세포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보이지 않는 믿음을 구체화 시키기 위한 신학과 사상들이란 암세포들을 위한 혈관들이 형성되었다.
또
우리의 눈으로 믿음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기 원함으로서
악한 영의 현시인 강신술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현재 개신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강신술도 ..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라는
히브리서에 언급된 믿음의 정의와는 정반대의 상태인..
바라는 것의 구체적인 실체가 눈으로 확인될 때 그 세계에 자신이 존재함을 확신하고
보이는 그 어떤 구체적인 실현들에 이제껏 믿음의 형태를 굴복시키고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고 귀로 듣는 것들의 포로가 되었다.
그 구체적인 실현들의 올무 매인 믿음없는 자들이
바로 악한 영들의 농간인 강신술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
그들이 그 악한 영들의 강신술의 기반을 지지하는 기반들이 되었다.
이 강신술은
어쩌면 믿음없는 세대에서 ..
그들 스스로가 그들의 믿음없음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게 하는.. 예견된 현상인지도 모른다.
새들은 자신들의 날개아래 바람을 의지하면 자신의 날개의 역량만큼
저 푸른 하늘 .. 어쩌면 저 하얀 구름 위까지도 날게 되어 있었다.
새들을 날개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노력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자연 ..
우리들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능력의 손길에 의한 것 뿐이었다.
우린 날개를 선물받은 새들이다.
구약의 하늘을 두루마리처럼 말아 걷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펼쳐진 새 하늘 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 되신 오직 성령의 바람을 타고 오를 수 있는 ..
예수 그리스도 세계에서 태어난 자유의 날개를 단 새였다.
우리는 자유의 아들들 .. 자유의 새들이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확신하며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
그 믿음의 눈으로 우리에게 펼쳐진 새 하늘 위로 ..
지금 우리 주변으로 감아돌고 있는 .. 우리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바람을 타고..
내 아버지께서 오래 전부터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셨고 내 주께서 그 길을 예비하신 하늘 시온성을 향해
내 주께서 달아주신 자유의 아들의 날개를 달고 날게 될 것이었다.
정녕 그리 될 것이었다.
허망한 발걸음들과 땀냄새 가득한 육체적 노력의 산물인 인간사상의 바벨탑을 슬프게 보며 ..
정녕 날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