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Tougue
스페인 영화다..
유럽의 영화답게 빛의 노출도 컸고 영상미 역시 아주 뛰어났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처럼 내용보다는 영상만 머리에 가득 남는다.
1930년경 왕정이 쿠테타로 무저지고 공화정이 시작되었던 정치적 혼란의 시기..
이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 독일의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의 야심으로
스페인의 공화정을 몰아내주고 왕정이 다시 세워지도록 도와준다.
스페인은 그후 독일의 든든한 지원국이 되어
이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의 폐허에서 제외되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영화는 1931년 정치적 사회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른들의 이중적인 태도에
함께 병들어가는 아이 내면의 혼란과, 현실세계와 내면의 세계와 단절된 세계 속에서
뇌사상태에서도 몸은 죽기를 거부하며 심장을 계속 뛰게하는 것같은 본능적인 강한 생명력을 가진
영특한 아이의 슬픈 단면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의 마음의 상태와,
너무도 달라진 관계에 서게 된 현실 사이에서
감정적 연결고리를 사회의 거센 바람에 잃어버린채 ..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지만 결국 생존의 동물적인 본능쪽으로 향하고야마는
소년의 내면의 방황을 ..
대체 누가 누구편인지도 모르는 위험한 전쟁에 가담한 어린 영혼의 슬픔을 그리고 있었다.
상황이 어찌 변할지 모르는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치적 혼란의 중간에서 끼어서
자기 안위를 위해 자기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국민들에겐 옳고 그름은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었고
오직 생존을 위해 우세하는 권세에 고개를 돌리어 웃고 환호하는 기계적 인간이 민초들의 삶이었다.
슬프게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갓 입학한 어린 소년이다.
그 소년의 짧은 기간을 그린 성장 영화였다.
심약하고 선천적인 천식이 있어 조금만 무리해도 호흡기의 보조를 도움받아야 하고..
내성적이지만 영리하고 사리분별이 분명한 소년의 눈에 비친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에 혼돈스러워하는 아이의 눈빛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학교 선생님은 학교에 늦어도.. 시끄럽게 떠들어도.. 매를 드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이 소년의 담임 선생님은 정년 퇴임을 바로 앞 둔 경험많고 노련한 분으로서
공부가 더 이상 공부가 아닌 주변의 친구나 환경으로 인식하게 만드셨다.
그래서 아이는 그 선생님에게 점차 믿음과 신뢰와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독일 히틀러의 도움으로 공화당이 무너져내리고 왕정이 세력을 잡게되자
공화당 간부들과 자유를 외치던 애국지사들이 숙청되었고 그 숙청 대상에 그 소년의 인자하신
선생님도 올라가 그분도 공개 재판에 불리워 서게 되는 것을 소년은 눈으로 목격한다.
소년은 기껏해야 초등학교 2. 3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정치 상황을 이해할 길이 없고..
자신의 어머니가 표정관리차원으로 공화당 간부들을 배척하는 말을 들은터라..
눈으로는 자기가 존경하던 선생님이 죄인의 모습으로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그 자체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어 실망감과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지만
아이는 영악하게도..
입으로는 자신의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저주를 퍼부으며 삶을 위한 자기 표정 관리를 착실히 행한다.
영화의 제목인 '나비의 혀'는 본디 그 소년의 선생님이 자연시간에 알려준 표현이다.
본디 나비가 꽃에 앉아 둥굴게 말린 대롱관을 펴서 꽃의 깊은 곳에서 꿀을 따 먹는 상황을
기억하게 시키셨고
그 둥글게 말린 대롱관은 아이들의 이해를 돕게
마치 시계 속의 스프링 같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하셨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앞두고 3분 정도가 되어서야
영화의 제목을 왜 '나비의 혀'라고 했는지가 이해가 갔다.
시계속의 스프링같다는 말의 느낌처럼 ..
생명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금속성의 부속의 느낌..
생존을 위한 입.. 민초들의 입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