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신이 가진 믿음의 크기도 하루 하루의 믿음들이 모여 이루어진다고 말이예요.
믿음의 길 하루하루는 때때로는 어제의 믿음과 오늘의 믿음이 다른..
아주 다른 개체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혹 그런 날을 만나면 스스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쾌청하게 맑았던 날을 보내고 나서 내일도 쾌청하리라 예상하였으나
아침에 예상치 못하게 천둥번개치는 그런 날씨를 맞이하는 것처럼 말이죠.
어제 오늘 영적 감수성이 무척 떨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괴로운 날은 바로 이런 날입니다.
고통스런 현실에 마주하는 것보다 차라리 영적 감수성이 둔해지는 날을 견디는 것이 저에겐 더 힘이 듭니다.
꼭 이런 날은 .. 물고기가 파도에 밀려 해변가에 떠 밀려져 올라와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거센 파도가 몰려와 그 파도에 파묻혀 물 속으로 끌려들어가길 바라는 물고기의 심정..
그 심정과 똑 같은 심정으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를 생각하며 아가미를 들썩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의 영향으로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될 수 있는 친정식구들에 대한 걱정과..
약국 관리상의 문제로 인한 실질적인 고민들..
어디까지가 공의에 기초한 사랑을 나타내는 일인지..
어디까지가 공의를 기초로한 지혜로운 결정인지를 분별해 내는 것이 ..
제겐 아직 너무 어려운 문제여서 그것에 집중해 있느라 영적인 어두움을 불러들였던 것일까요?
누군가의 글에서의 이런 표현이 떠 올랐습니다.
아침이 시작되고 또 밤을 맞이 하면서 한 날을 수고로움과 한 날의 기쁨을
꼭 활동사진 필름을 한 장에 찍어 내는 것처럼 ..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괴로움도 한 장의 필름에 담듯..
그것들을 하루에 멈추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그래서 저는..
믿음의 날들도 그 표현처럼 주어진 상황, 그날의 컨디션, 그날의 영적인 민감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지만
어제와 비교하지 않고 한 날을 한 커트의 필름에 저장하는 내용처럼..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몸짓만이 필요한 것이지..
갑자기 안개가 내린 것처럼 둔해진 영적인 시각의 민감도를 가지고 놀라며 충격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의 곤고함은 이제껏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게 있어서는 알고 당하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영적인 뿌리가 느껴지지 않아 ..
마치 배 아래 두 다리가 느껴지지 않고 몸통만 유령처럼 떠 다니는 것같은 느낌.
이 세상의 육의 세계에서도 하나되지 못하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정처없이 떠도는 영혼의 슬픈 노래가 메아리가 되어
그 메아리와 하나되어 제가 우주 밖으로 내던져 우주 고아가 되어버린 느낌..
그 느낌은 까만 잉크같은 우물에 빠져 그 안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현기증 속에서
제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내려는 안간힘과 함께하는 그 시간의 곤고함 자체였습니다.
또 새 날이 밝았습니다.
햇살과 함께 싱그러운 바람과 함께 저는 또 새로운 날을 받아들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그 예전의 영적 어둠의 상태로는
이제는 더 이상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었음을 저는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구원자이시며 저의 주인이 되신 예수의 은혜라는 물을 떠나서는
단 한나절도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물고기가 되었음을
저는 또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는 ..
아버지의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저에게 있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당신은 저의 시작이며 끝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이미 당신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생명이 되었음을..
이 아침에 고백하게 됨을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의 영원한 종이며 당신의 사랑이 움직이실 때 함께 움직이는 바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