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HOME
난 사실 중국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사건 하나에 지나칠 정도의 감정이입이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장이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DVD를 들고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심을 썼다. 그걸 보고 싶어하는 친구에게 ..
예상 밖으로 아름다운 시화 한편을 본 것처럼 여운이 남았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한다.
시골길을 따라 트렉터를 타고 가는 젊은 이에게 촛점은 맞춰지고..
그가 그의 부친의 부고를 전달받고 시골 자신의 집으로 가는 길이 흑백으로 펼쳐진다.
사실 난 그 영화를 보면서 내내 눈물을 닦아야 했다.
한 소녀의 순수하지만 절대 소극적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름다워서 눈물이 자꾸 났다.
장이모 감독은 실제 영화의 촛점이 되었던 사십 년 전
깨끗하고 맑은 순수한 젊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오히려 색깔을 넣었다.
감성 가득한 애틋한 사랑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을 바람에 끝없이 움직이지만 화면 전체를 덮는 화사한 은행잎의 노란색으로 물들여 놓았고,
아프고 시린 기다림과 그리움의 감정을 차디찬 겨울 바람에 흩날리는 짖눈깨비의 하얀색으로 표현했다.
사랑하는 이가 좋아하던 붉은 옷을 입고 그가 온다고 약속한 즈음에 맞추어
그녀가 기다리고 선 마을의 길목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추위에 하얗게 질린 얼굴과 대비되게 그녀의 마음같던 머풀러의 붉은 색이
시린 하얀 그리움 위에 피어난 꽃으로 피워낸 것 같았다.
젊었던 시절.. 그 젊은 남녀의 애타는 그리움과 기다림.
단순한 환경.. 단순하지만 가치있는 일.. 단조롭지만 순결한 사랑으로..
한 평생을 원없이 살다가 죽은 한 남자의 생은 지극히 평범하였지만..
그것이
한 여인에겐 삶의 의미의 시작이었고 삶의 의미의 끝이었다.
감독은 그 의미를 필림에 색깔이 있고 없음으로 나타내려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랑으로 인한 시리고 아픈 마음과 상실의 고통을 겨울이란 계절로 표현하였고
겨울이란 가을의 종결도 의미하지만.. 봄을 위한 진정한 시작이라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독백에 가까운 상황 설명을 하는 현실의 세계를 흑백처리를 함으로써..
한 여인의 평생동안 유일한 사랑이었던 이와의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 이후의 시간은 이미
그녀에겐 실제 의미를 잃은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듯 했었다.
색감의 대비와 유색색과 무채색이 주는 감정의 표현들이 단순하지만 동화책을 보는 것처럼 정겨웠다.
나의 경우만 해도 논리와 실리에 근거한 생각들에 밀려
나름대로 소중하게 여기던 감성적으로 내려놓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자주 힘없이 밀리고 있는 편이다.
주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이제는 내 안에서 그 가치를 두고 혼란을 겪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감 떨어지는 나에게 있어서
논리와 실리를 내려놓고 나서도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없어 할 때가 더 많이 있음은,
아직 그 가치의 혼란 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것이 추억이고 기억이라면,
그 추억과 기억을 위해 때로는 불편하고 비능률적이라 하더라도
감성적으로 소중한 일에 선택의 무게를 실어주는 것의 가치는 충분히 존재한다는..뭐 그런 생각이었다.
과연 대륙적인 기질을 이어받은 중국 여인네의 사랑법은 우리네 소극적인 사랑법과는 차이가 있었다.
연애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라 직접적인 대화는 없어도
정직하고 건강한 사랑의 감정은 마음을 넘어 눈빛을 넘어 서로에게 전달되기에도 충분했지만,
자신의 사랑을 위해 들이는 지극한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행동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단순한 소재, 단순한 배경, 단 한편의 배경음악으로 구성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여운이 남는 까닭은 한 편의 동화를 본 것 같은 이미지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이 영화는 동양화적인 멋의 가치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더 가치를 느끼게 해 줄 것같아서 ..
세계적인 영화의 평가 가치로서는 빛을 내지 못하고 뒤로 밀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