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8. 2. 12. 20:14

며칠 전

묘한 일본 영화를 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생각이 모두 각각이었다.

그래서 의견이 분분했다.

  

'저 남자들의 감성으로는 저 영화는 좀 버겁지!  아마도..' 라고 비웃으며

나 혼자 유유히 남편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 영화는 다양한 형태의 추리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처음부터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

보는 각도에서 따라 여러 형태의 과정과 결론이 추리 가능한 

열려진 극본을 의도해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캄한 밤하늘에 떠있는 밝은 달이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날카롭게 와닿았다.    

솔직히 밤의 어둠이 무섭고 싫었다.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원죄의 가변두리에서

죄의 족쇄에 이끌려 종노릇하는 모습들을 살피고 온 것처럼 ..그냥 기분이 우울하고 무거웠다.

 

 

"유레루" 의 뜻은 흔들거림이다.

 

이야기는 흔들거리는 다리 위에서처럼 계속 흔들거린다.

 

지극히 온순하고 정직한 남자의 가슴 안에서 사랑과 증오가 함께 나와

여린 감성을 가진 그를 고통스럽게 흔든다. 

 

두 형제가 한 여자에게 묘하게 얽히지만

결국은 피의 당김보다는 

남자의 갈비뼈로 지어진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에게로 이끌림이 보다 정직한 끌림이라서 인지 ..

선택이 아닌 본능의 움직임으로 두 형제는 한 여자에게 집중되고..

비극은 일어난다.

 

한 남자는,

원했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결국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장본인으로서의 죄책감과,  

오랜 세월 집안을 위해 당연히 희생하여 원하는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자신에 비해

늘 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끝내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까지 소유해 버린 동생을 증오하는 사람이 되어,

자기 피해의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양심조차 지키지 못하고 계속 흔들린다. 

 

그에 반해서 자유분망한 동생은

자기를 오랫동안 잊지 않고 있었던 옛 연인인 그녀가 죽고 나서야

그녀의 진정어린 사랑이 깊고 순결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그녀의 죽음에 산 증인으로서 형의 거짓증언에 대립하고 나선다.

 

엇갈린 증언과 번복되는 증언들의 혼선은 꼭 흔들거리는 오래된 다리 위에 선 것처럼 울렁거린다.

 

한 남자에게 그 여자는 한때의 사랑이었고

한 여자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사랑이었다.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나면서도 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가 그에게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형과의 친밀함을 두고 보기엔 질투가 나는 정도의 맹물같지는 않을 정도의 사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형에게 있어서 그녀는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기쁨이 되는 보물같은 존재였었다.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여자마저 자신의 동생에게 이미 마음이 가 버린 것을 알게 되자..

그의 사랑안에서 증오와 배신감이 불같이 나와 그녀를 죽음의 문턱으로 몰아 넣고

그를 붙잡는 그녀의 손을 외면해 버리게 된 것이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끼리이지만..

자신들의 여자문제에 관해선

피보다는 에덴에서의 본능적인 자신의 분신이라는 개념이 더 힘을 발휘하였다.

한 남자는 자신은 결국 피해자라는 생각과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은 동생의 도움을 거절하고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처음 자신이 했던 자백을 번복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나섰고..

 

다른 한 남자는 자신의 핏줄의 뜨거움보다 자신을 진정 사랑했던 죽은 여인의 편에서

자신의 형의 거짓을 밝히고 그 여인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도록 자신의 형의 안위를 위협하는 증언을 시작한다.

 

사랑하던 마음에서 배신감과 증오라는 독버섯을 함께 낼 수 있다면..

사람들이 하는 그 사랑이란 마음은 ..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랑이 아니라 자기 에고이즘으로 인한

자기 당착의 당연한 부산물의 하나의 형태란 말인가? 정녕..

 

남녀간의 사랑이나.. 형제간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사랑이나..

모두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법인 자기를 부인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안에서만 완전성을 입어 

각자의 색깔있는 형태의 완전한 사랑도 존재할 수 있었을 것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면서 완전한 사랑에서도 멀어지게 된 것이었을까?

 

"내 살중에 살이요, 내 뼈중의 뼈라"라 외치며 하와를 반겼던 아담이지만

죄가 들어오고 나서 처음 나타낸 아담의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저에게게 주신 여자가 저에게 주어서 먹었습니다."라는 불완전한 사랑을 나타내기 시작되었고..

그래서 지금도 사랑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엔 조금 억울한 모호한 사랑 밖에

할 수 없게 되고 만 것일까?

 

나 역시 아담의 원죄의 기운에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육신의 장막 속에 거하는 사람인지라..

영화 속.. 세 주인공 어느 누구의 감정에도 이질감을 느끼며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누구의 입장에서 그 입장을 옹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단지 인간적 감정을 뜨거운 피처럼 그대로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그림자 없는 선과 악을 가름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매여 있었을 뿐이었다.  

 

선과 악의 정의 규명은 오직 선과 악을 내신 분..

오직 그 분의 판단이 그것을 가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될 것이라 결론을 맺었고,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으로 지어주신 그분을 떠나는 것이 죄라는 사실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