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온기
종일..
짙은 회색의 하늘..
발목까지 쌓인 눈..
눈을 뜰 수 없을정도로 무수하게 흩날리는 눈송이..
여러 방향에서 부는 방향으로 제 머리카락은 꼭 잡풀 뒤엉킨 수풀더미같이 되었습니다.
방향감각을 잃은 토끼처럼 종일 그 곳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하고 붙잡혀 있었습니다.
제가 발을 두고 있었던 그 곳은..
아버지 생각도 ... 제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었는지도..
제가 어떤 아이인지 조차도 생각나지 않는 ..저의 정체성 혼란의 세계였습니다.
해가 지고 나서야 형광등 불빛 환한 약국안으로 들어서니..
저의 어제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반갑기 그지없고
제 이름을 불러주는 남편이 고마웠습니다.
아주 가난한 마음이 되어 저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
그 얼음처럼 가난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것은
얼음을 끌어 안는 화사한 세계의 불꽃같은 저의 일상이 아니라..
소리없이 얼음을 포근한 기운으로 감아도는 바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온기였습니다.
당신의 귀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 아들이 이룬 순종을 우리들의 순종으로 여겨주시고
그 아들이 이룬 의로움을 우리들의 의로움으로 옷 입혀주셔서
당신의 아들을 부활시키시고 당신의 우편에 앉히신 그 길로..
당신 희생으로 아버지의 의를 세우신 새로운 사랑의 법의 그 길로..
그 사랑을 믿는 모든 당신의 백성들을 그 아들이 앉으신 자리로까지 부르시어
당신 아들에게 두는 믿음으로 그 아들과 하나되게 하신..
아담이 바라던 그 자리까지 기꺼이 허락하신 선하신 아버지의 사랑의 온기가 ..
저의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뺨과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여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