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한 번 생각해보아.
지금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었고 이제껏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었다고 다 진리는 아니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이들과 함께 그리 알아왔었다는 사실이라 해서 다 진리는 아니지.
오랜 전통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에서 바람직하게 잘 자란 믿음이라고 자랑하지 말아.
건강한 믿음은 오직 진리의 땅에서 자라 날 수 있는 것인걸..
진리란 사람의 인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세상만물을 지으신 분에게서 나온 것인걸..
한 번 귀를 기울여보아.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귀를 닫지 말고..
한 번 생각해보아.
혹시 우리는, 내가 믿고 싶은 것을 계속 믿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진리라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시 우리는, 내가 가르쳐왔던 것들이 혹시 우리를 도리어 가두고 있어
그 외 다른 곳에서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 세기 당시 그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이었던 유대인들의 성서적 견해의 눈으로는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오시고 그들의 바램과는 전혀 다른 비젼을 제시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지.
그들은 약속된 메시야를 여전히 기다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그 기도하던 입으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저주하면서 그를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었지.
생각해보아.
혹 우리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것들을 확신하며
다른 견해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다른 교파의 부정한 교리쯤으로 치부하지는 않는지 ..
진리에 대한 간구에 비중을 두기보다 사회의 인식과 전통에 맞는 무엇인가에 관심의 무게를 두고
우리의 귀를 선택적으로 열어 두고있는 아닌지..
만일 그렇다면 정말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일 세기 때의 유대인들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는지..
눈을 감아보아.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피조물 중에 낮은 자리..세상에서 전혀 주목받지 않을 초라한 자리에 오셔서
세상의 보편적인 사고의 인식을 초월한 사랑의 말씀을 가지고 오셨던 그분을 마음에 담아보렴.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라면 제게서 이 잔을 없애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고통스러워 하시며 더 간절히 .. 땀이 마치 핏방울처럼 땅에 떨어지도록 기도하시던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봐.
그 예수님을 위협적으로 몰고
그 예수님을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은 바로.. 바로..
그 시대의 전통과 관념에 의한 겁없는 교만이었지.
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랑이 없었다는 쪽으로 바라보기보다 차라리
그들은 그들 사회의 관념에 가두어진 스스로 자초한 피해자란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일지 몰라.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조상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관념 속에 가두어진 하나님이 되어버렸고
그분의 약속 또한 그들의 관념속에 가두어져 버린 탓이었지.
그들에게 살아있는 믿음이란 것은 오직 자신들의 현실인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구출해줄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과 오실 것을 믿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었지.
그 또한 관념이란 우물 속에서 바라본 하나님의 약속이었으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하늘 시온성 앞에 걸려넘어지게 하는 돌이란..예나 지금이나..
바로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 땅에서의 사상과 관념이라 나는 생각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에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이 지금도 고이고 있다면..
우리 사람들의 노력과 연구로 쌓아올린 신학의 모든 이론의 바벨로부터..
이 세상에서 정통이라는 사상과 관념의 바벨로부터..
이 세상에 속한 교단과 교파의 바벨로부터..
이제껏 익숙한 다양한 믿음의 형태와 믿음의 생활에서 나와..
한 성령안에 태어난 영의 자녀답게..
아버지와 하나된 예수의 영으로 그 영의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되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님 계신 하늘 시온을 향해 걸음을 이제는 떼어야 한다고 .. 난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