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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믿음의 길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8. 1. 18. 00:32

저의 믿음의 길에서만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부끄러움이 없다 함은 아버지 앞에 바르고 곧은 길만을 걸어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의 양심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옳다고 여겨지는 길로 판단이 되는 길이면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떠났었고..

또 그 길에서 이것은 아니다라고 판단되는 순간 저는 그 즉시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느 한 번도 그곳이 이미 나의 편안한 울타리가 되어서라든가..  인간적 의리 때문에라든가.. 

그런 이유로 양심을 접고 그대로 있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의 믿음에 아버지 하나님께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로로 하는 것 외에 

그 어떠한 통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귀는 열어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를 고대하면서도 자신들이 예상하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오신 예수를

신성 모독죄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던 일 세기 때의 유대인의 전철을 밟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시는 한.. 어느 시대에도 아버지께서 세우실 선지자나 예언자는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과 ..

예언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세대에 살면서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의 것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영광과 사랑을 증폭시키는 성서 이해라면 기꺼이 귀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언약을 기억하는 우리의 태도라는 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저는 믿음의 길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께로 가는 그 길에서 진리의 길.. 진리의 빛을 놓칠까 그것이 두렵지

황당한 길로 잘못 들어서서 필요없는 시간과 노력을 쓸 것을 두려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또 그 잘못된 길에서 발목잡혀 못 나올까 걱정 또한 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걸어온 그 나그네의 길의 모든 여정을 우리 주님께서 보아오셨기에

우리 주님께서 그런 저를 잘못된 곳에서 붙잡혀 살도록 놔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성서연구가 시작되고 일 년 만에 증인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저와 함께 믿음 생활을 하던 친분있던 지인은 저를 위해 많은 눈물로 기도의 시간을 보내셨었습니다.

사 년이 지나고 제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았을 때에 그 때는 사 년전 그 때의 모습보다는

더욱 더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며 기뻐하셨지요.

 

믿음의 길을 갈 때 때로는 진흙밭으로 후퇴하는 것 같아도 그 진흙밭일수록 은혜는 더 풍성하였습니다.

문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두는 사랑과 믿음이 문제이지

결코 장애물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논리를 찾았습니다.

아버지와 예수께 두는 진정한 믿음과 사랑으로 진리를 찾아 애쓰다가 당하는 불행은

자신들이 가진 완고한 마음으로 진리를 배척하여 당하는 불행과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라고요.

전자는 아버지의 은혜가 함께 하지만 .. 후자는 아버지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의 믿음의 노정에서 하는 그 모든 일에도..저의 특별함과 저의 빛남은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서는 본디 찾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만일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면

그것은 햇빛과 수 많은 모래에 있던 섞여있던 금가루가 잠깐 만나 빛을 낸 것에 불과한 것이지

저의 전체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오로지 믿음의 길을 가는 도중에 천한 그릇이지만 부디 선한 용도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한 가족이 된 우리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님께 영광과 감사의

찬송과 예배를 드리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