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를 도리어 부추키는 힘들..
개인적으로
이사야 8장 14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말씀대로
영원한 시온성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놓여있는 '거치는 돌과 걸려 넘어질 바위'는
다름아닌 우리 신앙에서의 최고의 덫인 '자기 의'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 의'를 신앙의 중심에 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대속의 가치는 문자적인 이해의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며,
'자기 의'를 가지고 나선 이들의 열심에는
아버지의 값없는 은혜의 빛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빛 위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뿐이리라.
'자기 의'란 족쇄에 원치않게 오래 붙잡혀 있었던 나로서는
'자기 의'란 족쇄의 힘이 얼마나 끈질긴 것이며,
원하지 않아도 어쩔수 없이 내 뒤로 더 길게 드리우는 내 그림자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내 의지가 가는 곳마다 진짜 원치 않았지만 그 그림자는 늘 따라붙었다.
어쩌면 ''자기 의'는 내가 태어난 첫 날부터 함께 하는 ..
내 육체가 존재하는 그 날부터 함께 했던 숙명적인 내 안의 또 다른 내 모습일지 몰랐다.
어쩌면 '자기 의'는 하와에게 속삭였던 뱀의 사악한 속삭임에 기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네 스스로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게 되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
그 말 뜻 안에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덮어두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기를 거부하는
'내가 내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정신!' 그것이
피조물인 우리의 죄의 뿌리이며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다.
예수께서 이 땅에 둘째 아담으로 오셔서 첫째 아담으로 시작된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을 시키시고
그분의 대속으로 우리의 이미 지은 죄는 물론 앞으로의 죄의 모든 가능성까지 도말시키시고
당신의 피로 정결케 하시어
아버지의 영광에 하나된 자신과 함께 그 영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아버지의 의를 세우신
우리 주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의 길목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하여야 할 일이 바로 아담의 원죄의 뿌리인
피조물로서 잘못 가진 '자기 주인의식'을 버리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 또한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한 아버지의 은혜로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오직 예수를 통한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그 길을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오랜 신앙의 길에서
'자기 의'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그 부끄럽고 추한 그림자를 내는 '자기 의'란 겉옷을 벗겨 주신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빛인 진리였다.
아버지의 영광과 하나되신 우리 예수님께서 계시는 하늘 시온성..
그 시온성은 아버지의 몸이며 영광 자체였다.
그 영광 안으로 우리를 부르시려고
아버지의 의의 도구로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신 그 은혜가 내 심장에 닿고
그 은혜가 나의 심장안에 '값없는 은혜'라는 글자로 새겨졌을 때에서야
나는 나는 '나의 의'라는 그 끈질긴 족쇄를 스스로 풀 수 있었다.
그 능력은 나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능력이고 사랑의 힘이었다.
아버지의 영광 안으로 부르신 그 곳 하늘의 시온성은
아버지의 영광과 하나되신 예수님과
또 이땅에서 부르심을 받은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할 장소였다.
이 땅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첫째 아담이 지었던 죄의 첫열매였던 '자기 의'의 주체였던 자신을
우리 주님의 귀하신 몸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고
둘째 아담으로 이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정결케 하시는 영으로 새로 태어나
오직 아버지의 뜻인 진리의 빛을 비추는 도구로 사용되는
아버지의 영광스런 아들들이 될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아버지의 영광의 빛인 진리만을 선포할 것이며
그들이 선포한 진리 안에는
오직 아버지의 영광과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존재할 것이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빛이라면 세상의 그것과는 달리
비춰지는 그 빛의 어느 방향으로도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 하나님께 원수되는 자들의 커다란 한 유형은,
하나님 이름조차 모르는 이방인이 아니라,
'자기 의'를 통한 열심으로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 정도를 가름할 수 있고,
'자기 의'를 통한 열심으로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상을 간접적으로 부추켜
아버지 이름을 부르면서도 아버지의 은혜의 장소에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만드는..
'자기 의'의 열심에 불씨를 던져주는 것과 같은 영향력를 끼치는..
모든 유형 무형의 존재들일 것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