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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버지가 좋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11. 25. 19:06

요즘 당신께 아버지란 표현을 겁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에선 당신의 딸이란 표현도 사용했었고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목을 생각하면 저 자신이 객관적인 눈이 되어 그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저 스스로도 새삼스레 조심스런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아버지 하나님께 생각이 젖어들면 차라리 그 표현이 정직한 마음이 되니까요.

 

감히 인간의 모습으로는 영광스러우신 이 세상의 창조주께 도저히..

그리고 감히..

그 단어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구주가 되신 당신의 독생자의 대속의 가치를 가진 믿음으로

저는 그분의 아버지이신 당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당신께 나아갑니다.

 

만일 합당하지 않은 표현을 제가 사용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바로잡아 주세요.

저의 표현은 단지 저의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들어간 뿐이니까요. 

 

 

저 안에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저희들을 향한 사랑이 성경 말씀의 글자에서 벗어나

저의 심장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에서 실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하였으니까요.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사랑의 강물이 찬란한 빛을 내며

제 영적인 시야 앞에 건강하게 살아 흐르고 있음이 보이니까요.

 

아! 세상에...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들이 성경책 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확인할 수 없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혈과 육을 가진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서 살아나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들과 그분의 제자들의 심장에 새겨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불씨가 

제 가슴에도 옮겨 붙었습니다.

   

 

아! 이제껏 제가 지도를 보았나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지도 너머에 실제로 나 있는 길을 봅니다.

 

이제까지 지도에 눈을 박고 가상의 발걸음을 생각하며

지도 위에다 상상으로 제가 걸어가는 것을 꿈꾸었지만..

 

이제는 지도가 머릿속에 들어있고

제게 보이는 것은 실제 은혜의 빛을 받고 있는

땅과 주변의 나무들과 꽃과 새와 개울과 하늘입니다.   

 

이전까지는 지도에 첨부된 내용대로

내가 내 딛여야 하는 발걸음의 자리와 자세와 생각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의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서라도 따라하려고 부자연스럽게 흉내를 내었으나..

 

이제는 실제 길에 맞춰 자연스럽게 걸어가니

그 첨부된 내용이 도리어 실제 걸어가는 나의 그림자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는 그 길에서 굳이 나무라지는 않으시지만 바로잡아 주시고..

딱히 가르치시지는 않으시지만 깨닫게 하시고..

당신을 내세우지 않으시나 당신의 손길로 안아 일으켜 서러움을 평안한 마음으로 바꿔 주시는

살아있는 온화한 바람..

 

바로 당신의 손길을 느낍니다.       

 

제가 지도 속 인위적인 발걸음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길을 가면서

가장 피부에 와닿는 이 바람은 아주 온화한 바람결입니다.

저는 이 바람을 성령이라고 확신합니다.

 

말씀 속에 가두어진 하나님께는 다가설 수 없는 두려움에 압도되었다면,

그 말씀 너머의 실제 하나님께는 그분의 사랑 앞에 부족하기만한 저의 불충이 죄송스런 

사랑하는 아버지 앞에서의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정말 기적처럼..

믿음이란 글자에서 살아있는 믿음의 비둘기가 살아 나오고 

당신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란 글자에서 사랑이란 따뜻한 온기가 새어 나오고

하나님의 약속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구원의 소망이란 글자에서

커다란 물줄기가 나오더니 찬란한 강을 이루며 흐르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감히 바라지도 않던 일이 제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지만 오히려 저는 평온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제 마음에 담기는 뜨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가 날이 갈수록 더더욱 좋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저의 부끄러움을 잃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족해서 죄송하다는 마음 뿐입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이 정말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