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영화

영화 '크루서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11. 7. 00:26

인간의 약하고 악한 심리의 독버섯이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저렇게 다양하고 화려하게 피어날 수 있을까? 

 

종교적 사회안, 믿음없는 지도자들의 이기적인 명예심과

겁에 질린 영악한 아이들의 살기 위한 돌파구가 맞아 떨어져 만들어 낸 마녀 사냥식 종교재판..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가 믿고 싶어하는 상황으로 물고를 트고

한 번 거짓말의 늪에 빠진 아이들 군중심리와 자가발전적인 마인드는

서로 하나가 되어 진실을 덮어 가고,

악은 악을 불러들여 진실을 부르짖는 사람들을 삼키고 있었다.

 

도덕적 종교생활이 그 사회의 배경이 된 그 곳은 종교지도자들의 마음이 법이 되는 상황,

 

악한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의 잇속과 관련된 형식적인 질문엔

진실을 덮는 악귀적인 피해자였음을 인정하는 것과 부정하는 것만 선택하도록 되어있었다.

 

이 두 가지 선택으로 삶과 죽음이 정해지는 상황.. 

진실과 신념과 자기 이름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의인들.. 

거짓임이 들어났지만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그 의인들의 입을 막아야 하는 종교 지도자들.. 

 

사랑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 채,

그 사랑을 소유하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가장 소중한 것에 칼을 들이대는 무모한 어린 여인 

 

이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

먼지만큼 작은 것일 수도 있는 ..

의미없어 보이는 작은 진실과 신념을 밝히기 위해 ..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버려야 하는 서글픔이 몰려와 마음이 아파왔다.

 

하지만 진실된 사람들에겐..

그들이 밝혀야 할 진실에 있어서

그 일의 크고 작음에 따라 중요성의 크기 여부를 달리하지 않을 것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그 일 자체에서 ..

절대 알면서 거짓을 증거하는 자리에 설 수 없는 그 정결한 마음들은..

어쩌면 그 당시에는 무의미한 희생을 불러 들이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러한 작은 희생이 수 많은 세월 속에서 ..

세상의 빛이 되고 정의를 세우는 보이지 않는 횃불이 되어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의 영혼이 어느 순간이라도 옳지 않은 일에 우리의 혀를 사용할 수 없는 일이고

의인들이 쏟은 피를 부정하는 자리에 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난 그들 사회에서의 의인들이 걸어간 길에 박수를 보냈다.

 

 

밀러의 희곡 <세일럼의 마녀들>을 영화한 '크루서블'은 인간적 약함이 만들어 내는 악함의 여러가지 방향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하지만,

주인공 부부의 진실되고 사랑스런 아름다운 대화가 순결한 비둘기처럼 내 머리 속으로 날아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