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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11. 3. 18:32

오늘은 모래바람이 종일 불어 하늘을 뿌옇게 가리고 있었습니다.

지열이 올라와 어른어른 한 여름 오후의 무료함이 저의 정신을 덮었습니다.

 

유난스레 머리가 맑지 않은 날, 제 심장만 살아있고 저의 정신은 온전히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해가 지자 하늘에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의 모래바람도 뜨거운 지열의 어른거림도 사라져버렸습니다. 

 

해를 보지 못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해바라기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쳐진 목에 힘이 오르면서 쳐진 꽃잎에 힘이 들어갑니다.

 

 

오늘은 빈 집 지키다 잠이든 아이로 살았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은 내려 사방이 어두워지자 

마음 가난해진 아이의 마음은

온통,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 내 어머니의 발소리에 가 있습니다. 

 

머리 아프도록 혼자 잠들었다 깬 아이에게는

문풍지를 스치는 바람결 하나하나가 다 다르게 느껴지고,

풀벌레 소리 하나하나 다 새롭게 살아납니다.

 

거울 호수에 별도 달도 떠오르며 자연의 소리까지 담기니

두 눈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깨끗한 눈물이 고이고, 

시린 머리는 자연의 소리를 다 감지할 정도로 맑아졌습니다.

 

 

오늘처럼 정신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날은 저에게 죽음과도 같은 날입니다.

오늘처럼 하늘이 보여지지 않는 날은 저에게 죽은 날과 같습니다.

저에게 당신의 부재로 느껴지는 날은 제게 날짜없는 날이 됩니다.  

 

괴로움이나 슬픔까지도 존재하지 않는 날..

괴로움과 슬픔을 우리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도 은혜란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 날입니다. 

 

오늘은 아버지께 드리는 그림은 받았던 하얀 도화지 그대로입니다. 

그것도 작품이라면 작품이 되겠지요?  

 제목은 '부재 (不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