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情)
"우린 마음 한 번 주면 일편단심 민들레여. 한 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주는 사람인겨."
" 멀리 있어도 맘 변하지 말고 그리 살자고..."
"꼭 연락 혀!"
소박하디 소박한 충청도 양반 특유의 목소리로 다짐을 받으셨다.
뉴질랜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공항에서의 일이다.
그 후로 내 카메라에 담긴 그 젊은 노부부?의 사진을 인화하여 보내드렸고
간단한 전화 연락을 하였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쌀 한 가마가 배달되었다.
당신이 직접 농사를 짓으시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 논에서 자란 것이라며
방아를 찧자마자 바로 보내신 것이다.
친정과 시댁이 다 도시라서 농사 지은 것을 직접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오늘의 일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다시 전화를 넣어 형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이분들의 진심이 목소리에 그대로 스며 전달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사람끼리의 인정이 어찌 이리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가진 것 넉넉하고 가세가 넓어 주변에 사람도 많으시건만
어찌 여행 열흘간 사귄 막내 동생같은 나에게 이런 정을 줄 수 있으신지 감사할 뿐이었다.
여행 때 사실 행복하게 난감하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분들의 지나친 배려 때문이었다.
시차 적응이 되질 않고 또 무리한 여행지 배정 때문에 피곤하였던 내 딸아이는
버스에 타면 잠이 들었다.
애 엄마인 나는 내 눈에 비친 이국적인 풍경을 기억에 담기 위해 차창 밖에 눈을 두고 있었고,
이 온양 어르신들은 아이가 바깥 풍경보다 더 먼저 들어왔는가 보았다.
그래서 버스만 타면 늘어지게 자는 딸아이가 분명 멀미를 하기 때문이라 나름 판단하고는
판단된 그 날부터 호텔에서 나와 버스에 오르는 아침이면
바로 딸애 귀 밑에 어제 붙여 놓으셨던 귀미테부터 확인하셨다.
덕분에 아이는 더 깊이 잠이 들어야 했다. 멀미와 전혀 관계없는 아이를 두고 말이다.
나중에 알게 된 나는 가만히 떼고, 그분들은 왜 떨어졌냐며 또 붙이시고..
난 그분들의 정성이 너무나 극진해 미안해서 멀미약이 필요없다 소리도 못하였었다.
틈만나면 "소영아. 니 엄마한테 잘 햐. 그려야 되는 겨"
그 말씀을 들으면, 꼭 친정 식구들의 후광을 든든하게 지고 있는 복 많은 딸처럼
내 맘이 그렇게 부유해지곤 했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알지 못하여도,
그 법을 넘어 이웃사랑이 이미 그분들의 마음에 자리해 있음을 보았다.
자신의 양심대로 소박한 자연의 순리와 함께 선하게 살아오신 그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만든 교회나 조직을 통한 인위적인 교육보다
차라리 하나님의 에너지를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는 자연이 바람에 전해주는 속삭임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
그분들도 우리 주님의 우리를 위한 위대한 사랑의 역사를 깨닫게 되시길
안타까운 마음으로 또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