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길'
1954년에 제작된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 페테리코 펠리니의 걸작 '길'이란 영화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 영화는 '중앙역'처럼 Road Movie 갈래였다.
아니 '길' 이 영화가 Road Movie의 시초가 되었다고 했다.
이런 영화의 특징은 길을 따라 자연의 배경 전체가 무대가 되기에 더 살아있는 배경이 되고
사건과 사건들을 통해서 인물들의 내면이 드러나기에 보다 정직한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그래서 난 이런 장르의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좀 모자란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젤소미나!
우리나라의 전쟁 이후 시절처럼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식구들을 위해 돈에 팔려 가는 소녀. 젤소미나!
깨끗한 영혼을 소유한 죄와는 무관한, 가엾은 새같은 소녀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은
거칠고 인간미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니 그녀의 앞 날은 어두워지는 밤과 같았다.
그 사람 잠파노! 의 조수로 길거리에서 북을 치고 사람을 웃게 만드는 유랑 광대일을 하며
그의 동료로, 부부로 살게 된다.
아무리 어린아이같이 순수하고 세상살이에 문외한이라지만 본능은 있는 법..
잠파노의 노골적인 바람기에, 죄없는 질투를 느끼며 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의 정직한 인간적 감정에 눈물이 났었다.
그런 관계에서도 그 사람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싹틀 수 있는 것일까?
당당하게 요구하지도 못한 채 무방비 상태에서 일방적인 상처를 받는 여린 새같은 그녀의 슬픈 노래...
그 노래엔 죄가 없어서 더 슬펐다.
슬픔에 젖어 길거리를 방황하면서, 외줄타기 하는 환한 얼굴의 소년같은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그녀를 찾아 온 잠바노의 손에 이끌려 간 유랑극단에서 그 얼굴을 다시 대면한다.
그녀의 깨끗한 영혼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된 그녀.
보이지 않는 질투가 잠파노와 그의 사이에 생겨난 것일까?
그 두 사람에겐 누가 먼저인지 모르게 다투는 일이 생겨난다.
그 일로 두 사람은 모두 유랑극단에서 �겨나게 되고...
생각이 살아있고 음악을 사랑하고 그 음악을 표현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영혼과 닮아 있었다.
그녀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었고 그녀를 처음으로 사랑해 주던사람이었고
그녀와 처음으로 영혼 대 영혼으로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건만,
젤소미나는 경찰서에 붙잡혀 어려움에 처해 있어 자신을 필요로하는 잠파노를 버릴 수 없어,
지금 함께 떠나자는 그의 권유를 뿌리친다.
하지만 그가 일깨워 준 자신의 가치와 마찬가지인 조약돌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두고
한 손으로는 그녀의 목에 걸어준 그의 목걸이를 매만지며 그녀의 이름을 노래로 부르며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운명의 날은 다가왔으니..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잠바노와 차를 고치고 있는 그가 마주치게 되고,
까칠하기 그지없는 잠바노는 아무 악의없는 그를 향해 몇 차례의 주먹질을 해 댄다.
그 과정에서 그는 머리를 심하게 다치고 만다.
그는 그녀에게 빛과도 같은 존재였으나 자신의 남편의 손에 그 빛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며
슬프게 절규하듯 울어대는 가엾은 새 한 마리.
그녀의 눈 앞에서 그는 결국 죽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어떤 움직임도 없이 열흘이 지나, 갑자기 잠바노 앞에 웃으며 나타난 그녀.
말문을 연 그녀는 미쳐있었다.
그녀에게 애틋한 감정를 이미 가지게 된 잠바노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그는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모닥불 옆에서 잠자고 있는 그녀의 손에 약간의 돈을 쥐어 놓고 그녀를 떠난다.
몇 년이 흐른 후 잠바노는 길에서 젤소미나가 즐겨 부르던 노래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고
홀린듯 그 노래를 따라간다.
그 노래는 그 동네 평범한 아줌마의 입에서 나는 노래소리였었다.
그리고 잠바노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미친 소녀가 즐겨 부르던 그 노래와
미쳐 돌아다니면서도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어 그 노래만을 계속 부르다 죽어간
젤소미나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듣게 된다.
젤소미나의 입에 달고 있던 그 노래는
원래 그녀를 사랑하던 이가 그녀에게 가르쳐준 노래였었다.
바다에서 쓰러져 통곡하는 잠바노 안소니퀸의 슬픈 몸짓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던 아주 가슴 아픈 영화였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새가 사람의 모습으로 살다가 슬픈 노래를 남기고
하얀 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