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젊은 두 남자.
그 나이에 죽기엔 너무도 억울한 남자들...
이 누릴 것 많은 세상에서 그들이 누린 것은 너무도 없었던 남자들...
사회의 응달에서 살면서 바다 한 번 본 적이 없이 여유없이 살았던 남자들..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공포에 어둠에 기죽는 해바라기처럼 고개 숙인 남자들...
시한부 인생을 살게 있는 자신들의 상태를 최근에 알게 되어 한 병실에 있게 된 두 남자는
그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취중에 탈출한다.
고장난 몸, 맨발, 병원복,무일푼인 그 남자들이 바다를 찾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화는 이 남자들이 바다를 보러가는 것을 돕기 위해 코믹한 내용들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코믹한 내용은 카스테라 켜켜 사이에 크림을 발라 맛있는 케�을 만드는 것처럼
밉지 않은 연결 다리가 되어 주어 감독의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돕고 있었다.
한 남자는 도전적이고 다혈질적이지만, 천국의 문앞에서 이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일 순위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 어머니가 가지고 싶어하시던 자동차를 사드리는 것을 꼽을 정도로
따뜻한 인간미를 가진 이였고,
다른 한 남자는 착하고, 신호위반조차 양심에 걸려 하지 못하는 양심적이지만
발작이 시작된 동료 친구를 위해서 총을 들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이였다.
성향이 너무도 다른 이 두 사람이 공통된 소망. 바다를 보러 가기 위해서 겪는 과정중에
코믹하게 등장한 멋진 갱단의 자동차와 그 차 트렁크 안에 백만 달라가 든 가방까지 주어지고
좀 더 상황을 쉽게 만들어 주려는듯 장전된 총까지 부여받는다.
천국의 문 앞에서 그들은 쓰고 싶은 곳에는 언제든지 쓰고도 남을 만한 돈을 쥐게 되었고,
쓰고 싶은 자리에 원도 한도 없이 그것을 사용하였다.
이들이 쓰는 곳은 욕심없는 사람들이 쓰는 그 범위 한도 내였었다.
그들의 이때까지의 노력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리려는 결정적인 순간,
갱단 보스의 너무도 멋지고 인간적인 도움을 받아 바다에 도착한 두 사람.
무서움이나 두려움 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던 용감한 친구는 여리기만한 친구에게
'두렵다!"라는 말을 남기고 "여린 친구는 진짜 함께할 수 있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안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용감한 친구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죽고
그 옆에 앉은 친구는 그냥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영화의 제목과 배경 음악이 잘 맞아서 영화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짧은 영화이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이지만 영화의 작품성은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죽어가는 그들의 심장에 생명의 씨가 없었기에,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에 그들은 그토록 해 보고 싶은 것들에 애착을 두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아담의 원죄로 인한 죽음의 시간이 언젠가 도래하겠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심장에 뿌리내린 생명의 싹이 있기에 그 죽음의 시간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옆에 있기에
우리가 다른 피조물과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커다랗게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