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식에 대하여..
내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나에게 자유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것은 제대로 된 한 인격체로서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다른 집에 비해 읽찍 문을 걸어 잠그고 밤을 대비하는 편인 우리 집은
벨소리를 듣고 마당으로 걸어나와 문을 여시는 어머니의 역정을 통과하고 나서
마루에 계시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사정을 설명하고 내 방으로 들어가야 했으니
생활의 자유와 한 인격체로서의 인정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생활의 자유를 허락받았다는 말이 더 정확한 의미일 것이다.
나의 본격적인 하나님을 찾는 여행은 대학에 가서부터였다.
미션스쿨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어릴적 하나님께 드렸던 약속대로 "내게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게 되면 하나님을 찾아 나서겠습니다"라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셔서 그 기회를 그 시절에 주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 기도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그 길을 마련해 주셨다는 생각에
하나님께서 참 진리의 교회로 이끄셨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내가 믿음의 세계에 처음 깊이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그 조직에서 침례를 받고 그 조직의 교리를 참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조직의 전파사업이 내 소명의식이 되었었다.
그때 가졌던 소명의식이 그 당시에 힘을 싣게 된 까닭은,
하나님께 당신의 뜻을 구할 그 당시의 마음에 사심이 없었고
응답을 구할 당시 현실로 복음이라 생각되는 일이 내 앞에 주어졌고
그 복음을 전할 당시 나의 상태가 생활적인 면에서 부끄러움이 없었으며 다른 친구에 비해서 비교적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어서였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소명의식에 힘을 싣게 한 명분은 지극히 율법적인 것이며 인간적인 것이었다.
믿음의 길을 계속 걸으면서, 율법적이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그 소명의식으로 완전 무장한 믿음의 동료들을 볼 때마다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예전에 박살나버린 그 때 나의 소명의식은 '믿음'에 근거하기보다 '자기 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생각하던 것보다 '자기 의'는 우리의 믿음 생활 전반적인 곳에 거미줄 쳐지듯 오랫동안 자리해 있었다.
우리가 전혀 의심조차 하지 않은 곳, 해가 내려쬐이는 밝은 곳까지 쳐져있었다.
이천 년 전 복음의 씨가 뿌려질 즈음에도 있었던 '율법주의적 자기 의'란 거미의 생명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첨예하게 개인과 하나님의 관계 사이에 존재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막고 있었다.
예수님과 직접 연결되었던 사도들이 뿌렸던 순수한 복음이 조금도 변질되지 않은 그 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즈음
그것을 가릴 것은 다른 이의 방해가 아닌 오직 스스로만이 책임을 지어야 할 '율법주의적 자기 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