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진리는 단순 명료하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어린아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땅속 식물들의 생명의 근원인 씨가 발아되기 좋은 곳
너무 깊지도 너무 얇지도 않은 곳에 시작되는 것처럼
진리는 너무 멀게도 너무 가깝게도 아니고 우리가 찾으려고 손을 뻗는 곳에 있었습니다.
진리는 창조물에서 시작하여 창조주의 뜻이 그 창조물들의 자연의 순리가 되어
우리의 생명현상을 유지하며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생명현상의 원리는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더듬어 올라가면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에 반하여 인간 철학과 사상의 세계는
진리와는 구별되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의 사상의 결국은 다람쥐 챗바퀴처럼 돌다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혹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는 끝없는 사상적 확산으로 끝없는 추리 그리고 허무로 달려나가 버렸습니다.
혹 또 다른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는 하나님의 모습이 변질된 사랑없는 신의 모습의 귀결로였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터득한 것이 있습니다.
진리를 진리가 아닌 사상에서 그 진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철학과 사상은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에 속한 것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을 찾아내겠다는 노력은 하나님의 능력에 도전하는
교만의 극치일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라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은 내 하나님의 편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편지에 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밝혀 주시고 우리에게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편지엔 우리의 시작과 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의 큰 물줄기인 믿음들의 역사가 담겨 있어 우리와 별개의 것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한 번도 만나뵌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그분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간접적인 그분의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그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전했던 복음의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우리들에게
사도들의 편지들을 통해서 사도들이 전했던 순수한 복음을 간접적으로 듣게 해 주셨습니다.
이 성서 이외에 다른 영감받은 책들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성경만으로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복음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씨가 뿌려지던 그 때로부터 2000년이 넘는 긴 세월 후
지금 우리 손에 전해진 그 책으로
하나님께 다가가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분의 능력에 도전장을 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영감을 받아 써진 말씀이
후일에 당신의 자손들에게 남길 당신의 편지로 보존되어 내려오다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 의해 번역되어 한 책으로 추려지는 과정
그 전 과정에 당신의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믿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성경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을 가지고 번역에 들어 갔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성경 자체가 정말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는가란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며,
많은 필사본 중에서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정경으로 채택되거나 제외되었던 그 과정을 두고
성경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주장을 피력하며,
다른 영감 받은 책들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경전들과 함께
성경에서 파생된 인간의 추리가 함께 섞여있는 책들과 연계하여 살펴보아야
기존의 성경에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에 살을 붙여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이들의 믿음이 과연 겸손한 지에 대해 저는 감히 의심해 봅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편지라 하더라도
그 편지 안에서 아버지가 남기시려 했던 의도와 사랑을 찾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보고 또 보아 그 편지가 너덜너덜 할 때까지 그 뜻을 헤아리려 애쓸 것입니다.
편지에 적힌 철자가 틀리고 띄어쓰기가 어떻고 사용된 단어와 비슷한 단어의 차이의 의미는 무엇이고 따지기 보다
전체적으로 그분께서 말하시려는 요지에 뜻을 둘 것입니다.
편지는 누가 무슨 의도로 남겼는지가 그 편지의 가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표현방법이나 사용된 단어보다, 전하고자 하는 뜻이 편지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트에서 제 손으로 먹거리를 구입할 때
유전자가 조작된 먹거리를 사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눈 앞에서는 큰 문제는 없을련지는 몰라도 자연의 원리에 도전한 사람의 과학 기술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조금 비싸도 유전자 변이 되지 않은 순수 우리나라 콩으로 만든 두부를 고집합니다.
유전자 변이 콩의 처음 시작은 자연의 콩이었으나
과학과 기술의 영향으로 알 굵고 벌레 먹지 않고 대량의 결실을 맺도록 만든 콩이 되었습니다.
그 콩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과학자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그럴듯한 연구실에서 태어났습니다.
눈에도 보암직스럽게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학식을 가진 사람에 의해 좋은 의도로 정성껏 만들어진 깨끗한 과학의 산물인 콩보다
햇빛에 그을리고 흙과 잡초에 거칠게 변한 손에 의해 거둬진
자연에 근거해 나온 그 콩이 하나님께서 주신 순수한 우리의 양식 임을 믿습니다.
그 콩이 내가 믿는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의 손길에만 의존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먹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 눈에는 자연의 콩보다 질이 더 좋아 보이지만
한정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겁없이 만들어 놓은 자기 덫일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한낱 먹는 것에도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에 인간 과학이 함께한 것을 거부하는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의 철학과사상과 추리가 들어간 이론들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을 닮아 소박하고 단순한 진리로 하나님께 향해져야 할 때에,
화려한 단어들과 문장을 사용된 추상적이고도 추리에 가까운 인간사상의 이론들이
하나님을 찾아나선 이들의 발걸음을 미혹할까 싶어
저는 걱정스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