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끈질긴 씨름 1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6. 21. 09:44

지난 밤 꿈이 아주 기분 나빴다.

우리 식구 모두 까만 옷을 입고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업을 빼먹고 마닐라 시내 우체국으로 혼자 나가 집에다 전화를 하였다.

집에도 아버지 사무실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계추처럼 생활 하시는 우리 부모님께서 그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보기 드믄 현상이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사무실까지...

 

한참을 우체국에 앉아 있다가 우체국 업무가 마치기 직전에 전화를 다시 넣었다.

아버지 사무실에...

그런데 왠 일. 이모부께서 전화를 받으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찾았고 아버지께서 자리를 비우셨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날은 우리 아버지 장례식 날이었다.

 

그 날 밤, 아버지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날 만나러 필리핀으로 오신 꿈이었다.

기숙사 앞에서 날 기다리고 계셨다.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아버지 손을 잡고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꿈이었다.

기쁜 꿈이었지만, 어제의 일이 마음에도 걸리고, 도체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밤에 잠도 설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었다.

그날의 온 수업을 빼먹은 채

종일토록 기숙사 발코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뒤 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이상해서 전화를 넣었으나 

내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께서 다른 곳에 사무실을 하나 더 내셔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다고 하셨다.

그것도 아주 평온하게 말씀하셨다.

난 그 평온에 나의 모든 걱정을 내려 놓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보다 6개월 전에 이미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나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