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6. 8. 08:38

한 사람은 주인집 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집의 부엌일과 허드렛일을 하는 이였었다.

그 두 사람의 인연은 서로 엮이어 동서지간이 되었다.

 

그 당시 인권에 대해서 개념이 서 있지 않던 때이라 한 사람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한 여자에겐

자신도 자신이겠지만

자신의 친정 식구들 앞의 위신은 더 이상 초라해질 수 없는 자리로의 추락이었다.

그의 남편 역시 처가에 위신이 안 서는 일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처가가 바로 옆에 있었으니,

갑작스럽게 닥친 그 현실은 피부에 바로 와닿는 절실한 것이었으리라.

 

그리하여 한 가정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스스로 고립된 섬에 갇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었으나 갑자기 나타난 주변이,

결혼 한지 두 해 정도 밖에 되지 않은 젊은 부부를 고립된 섬에 몰아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리 의지할 곳 없던 새로운 식구들은  

아이 하나를 낳아 자신의 혈육 앞에 짐을 꾸려 다시 나타났다.

 

전혀 새로운 관계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두 여자.

한 사람은 그 관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대등한 관계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나이의 여자들끼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같은 나이인 어린 아이 둘 사이에서도 마찰이 자주 일어났다.

한 아이는 다른 아이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어쩌면 그 쪽 아이는 이 쪽 아이가 좋아서 자꾸 손을 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쪽 아이에게는 싫은 일이 되어 수시로 자지러지게 울게 만들었으니

한 집에 사는 젊은 엄마들끼리의 언짢은 상황은 서로 피할 수 없는 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 공간에서는 어쩌면 피해자일 수 있는 한 여자에게

강자의 자리에 서 있다는 입장의 이유만으로

자신의 괴로움을 어디에다 하소연 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났었다.

다른 한 여자는 스스로 찾은 허르렛일에 약자의 눈물을 가지고 나왔으니 말이다.   

 

함께 의논하여 한 울타리에 머문 것이 아니기에

그 기형적인 형태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 가장은 자신의 혈육을 배신하기로 작정하고 자신의 가정이 살 길만을 모색했다.

자신의 기반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혈육의 모든 기반을 몰래 움켜쥐고 야간도주 하였다.

 

강자의 자리에 있으니 약자의 상황을 보듬으라 무리하게 요구해 오던 가장은 끝내

자신의 아내와 처가를 대할 면목을 잃게 되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올곧은 자존심과 성실함 하나로 버티던 그에게

그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는지 그는 그 상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떠났다.

편지 한 장을 남기고...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두 여자만 아이들을 데리고 이 세상에 남았다. 

한 집안에 시집 온 똑 같은 입장만 남았다.

일가라곤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전부였다.

 

그 많은 사연들은 거친 인생길에서 내려 쬐이는 강렬한 태양 아래 다 증발되어 버리고  

  

그 젊던 여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성을 잃은지 오랜 여자들이 되어

친동기간보다 더 뜨거운 소속감으로 서로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