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크는 아이
한 6년 전 쯤이었을까?
약국 앞에 그리 젊지 않은 여리고도 가냘픈 아줌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도 새까맣고 힘도 없었으며 업고 있는 아이도 흘러내려 거의 허리에 매달려있기 일수였다.
늘 길가 트럭 과일 가게 앞에서 서성이며 동네 할머니들과 어울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들이나 길가 과일 파는 아주머니
혹은 술에 찌들어 길가에서 화투판을 벌이는 아저씨의 손을 오가며
아이는 세월과 함께 쑥쑥 자라났다.
난 아기나 아기 어머니나 늘 안스러워 세상의 불공평함에 가슴이 메이곤 했었다.
난 분명 그 아기 어머니가 어딘가 아프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이 보였고
손까지 떠는 그 몸으로 아기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었다.
그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 위로 차들이 달리는 길 모퉁이에
빨간 고무 다라이에 물을 담아 두고 발가벗고 그 물통 안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노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더위를 먹을까 걱정스러웠고
찻길이기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술주정뱅이 아저씨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에 반응하는 아이를 보면
은근히 속이 상하기도 하였었다.
저 길거리에서 무엇을 배울까 싶어 인간적인 교만한 마음에
아이를 길거리에서 방치해 두고 있는 아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어 했었다.
그래도 아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와 아이 어머니는 비가 오는 날에도 과일 트럭 앞에서 늘상 모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우산과 장화를 신고...
겨울에는 털옷과 털신을 신고 깡통의 장작개비 난로 앞에서 불을 쬐면서...
나중에 알은 사실은 아이 어머니가 과일트럭 아주머니와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글자와 숫자를 몰라서 큰 시장에서 과일을 상자로 떼와서는
나눠서 얼마에 팔아야 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고,
아이 어머니는 전문대학정도의 학력이 있어 나누고 받을 가격을 계산해 주고
혹여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우면 트럭가게도 바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댓가로 아이와 함께 점심을 제공받는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이런 느낌을 받았다.
자연 앞에서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을 가지고 자연 전체을 판단했다는 느낌.
꼭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는 많이 자라서 이젠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다닌다.
문화 혜택을 많이 받아보지 않아서인지
어린이집에서 배우는 공부와 선생님이 하는 말을 아주 값지게 여기는듯
어린이집 셔틀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는 자세와 가방을 든 작은 주먹이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다.
항상 예의바른 태도와 깍듯한 존댓말을 쓰는 어머니를 두어서인지
그 아이의 아침마다 하는 인사는 얼마나 반듯하고 예쁜지 모른다.
그래, 내 눈이 교만했었다.
자라는 곳이 정돈된 방안이면 어떻고 길가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무릎이면 어떻겠는가?
자라는 곳이 세상교육 많이 받은 세련된 엄마의 가르침이면 어떻고,
길거리 땀냄새와 교육이란 것을 논할 수는 없지만 따뜻한 가슴들의 양심적인 본보기는 어떻겠는가?
아이는 사람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가 키우는 것인걸.
누가 길거리 질펀한 농담과 부드러운 눈빛을 가진 초라한 사람들의 손에 손에 거쳐 크는 아이를
밖에서 크는 아이라 집안에서 좋은 교육 받아 자라는 아이보다 못하다고 자신하겠는가?
그 아이는 세상에서 소외된 길거리 사람들의 사랑과 세월로 자라났다.
난,
아이는 세상 반듯하고 세련된 교육으로 훌륭하게 키워지기도 하지만,
그 세상에서 소외되었지만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따뜻한 가슴으로도 훌륭히 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생각해 본다.
내가 평소 더럽다고 여기던 물체와 존재들에 대해서...
똥은 더러운 것인가?
아니었다.
감사히 먹은 것을 다 활용시키고 난 수고로운 결과물이라는 것을...
먹는 것이 좋은 것이면 그것을 이용하고 남은 수고로운 것이 어찌 더러움이겠는가?
똥을 더럽다 천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 자기 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난 왜 미처 생각지 못했을까?
이 사회에 기득권이 있으면 소외층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소외층의 냄새와 소리는 왜 눈살을 찌푸렸을까?
우리가 더럽게 여겨야 할 사람들이란
말라 비틀어지고 흙먼지 뭍은 민들레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도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앞서 거친 자연을 닮은 사람을 천하고 더럽게 여기는 사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