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은혜였습니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습니다.
저에겐 이야기꺼리가 많다고 말이지요.
너무도 평범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게 비범하다고도 하였습니다.
그 까닭을 생각해 보니
무엇인가가 조금은 항상 부족했던 나의 환경 때문에 조금은 늘 날이 서있었고,
그 날선 마음 주변의 스산함이 나에겐 늘 가시처럼 존재하였기에
남들이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일들도 세심하게 다 기억에 자리잡혀
그 기억으로 거미가 자기 집 짓듯 말을 내니
친구에겐 그리 보였던 것 같습니다.
세상 걱정없이 태평한 친구들의 안온함이 나에겐 늘 부족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철이 너무 빨리들어, 주변이 내 눈에 너무 많이 보였던 결과 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늘 우리 가족과는 직접적으로는 관련없는
주변 문제들의 바람으로 인한 바람.
그 바람이 늘 우리 가족들에게 평화를 깨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제가 태어나 뿌리를 내린 곳은 양지 바른 땅이었습니다.
물도 부족하지 않은 땅이었지요.
하지만 양지 바른 땅의 가장자리였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뿌리가 내린 곳은 기름진 양질의 토양이었으나 다른 곁 뿌리들은
다양한 환경에 그대로 노출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어떤 뿌리는 물이 너무 많은 곳으로 노출된 것에 반해
어떤 뿌리는 덮어줄 흙이 부족한 매마른 땅에 노출되어 있기도 했었지요.
다양한 환경의 교집합 부분. 그 자리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리였고
당연히 그 자리가 우리 자리가 되었습니다.
상대적 빈곤감과 상대적 부유함 속에 살면서 많이 부유함도 많이 가난한 것도 저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이성적이며 교양있는 문화적 사치도 저의 것이었고
살기 위해 내는 본능적인 절규 속 아귀다툼도 저와는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부모님은 내 가정의 울타리를 높이 치는 분들이 아니어서 그 다양한 환경은
곧 우리들의 환경으로 노출되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도 감수성 예민한 저이기에 그 환경이 저의 환경으로 다 느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외부의 바람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여름날 저녁
하늘에 붉은 기운이 깊어지면서 어두워질 무렵
시원한 냉면을 내 놓으신 엄마의 솜씨를 서로 칭찬하며 맛나게 먹던
우리 식구들만의 평범한 저녁 시간이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했는 지를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바람의 소용돌이 속 황량함을 겪어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남들보다 하나님께 좀 더 읽찍 다가가게 된 것도
다양한 환경속 교집합이던 그 환경에 살면서 사람의 곤고함과 약함과 악함에 대해서
다른 이들보다 좀 더 읽찍 냄새를 맡은 것이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좀 더 빨리 눈치를 챈 것일 겁니다.
그리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제가 가진 것이 정말 많음을 알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은 진정 저절로 당연히 있는 내 것은 절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조금은 늘 채워지지 않고 부족했던 내 인생의 가시와 같았던 환경.
늘 보장되어 있지 않은 평화에서, 진정한 평화를 소원하게 되었고
댜양한 환경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깊은 맛과 진정한 가치에 대해 늘 생각하게 되어
제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무엇인가 항상 조금은 부족한 듯한 환경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