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1/5

십 년 넘는 공백을 넘어서...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2007. 4. 26. 23:38

필요한 물건이 있어 시내에 나갔었다.

물건을 사고 바쁜 걸음으로 사람들을 헤쳐가며 지나는데 낯이 익은 얼굴이 스쳤다.

 

나 역시 다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쪽에서도 다시 나에게로 시선이 돌리니

서로의 촛점이 맞추어졌다. 

 

우리의 사이는 남이라고는 이미 할 수도 없고 혈육이 아니니 동기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관계의

두 사람이었다. 

 

언니가 한국에 나와 있다는 사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고, 언니 역시 날 찾으려면 못찾을리 없었겠지만

기억에서 잊혀진 것도 아니면서 찾지도 않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세월이 만들어준 무형의 존재에 비추어,

서로 미안스러운 듯 서로 말없이 손만 잡고 있다가, 아주 일상적인 말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중학교 1학년, 언니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언니는 이모네 반 학생으로, 난 담임 선생님의 조카로, 우린 만났었다. 

 

언닌 복잡한 가정 환경으로 당시 자신의 담임 선생님 집인 우리 외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아주 좋아 그 당시에 공부도 뛰어나게 잘 하던 언니였었다.

우리의 만남은 내가 방학이 되어 외가에 내려올 때에만 가능했었다.

 

언니가 많이 외로웠던 시절이었고 나 역시 늘 외로웠던 아이였기에 서로 많은 의지를 하며 지냈었다. 

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살았으니 서로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우린 참 많이 달랐다.

내가 감성이 많이 발달되어 있는 반면에 언닌 이성이 많이 발달 되어 있었고

나는 종교적인 성향이 진한 반면 언닌 현실적 성향이 두드러졌다.

 

우리의 공통 분모가 있었다면 자신들이 바라는 아름다운 꿈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의 역한 냄새가 나지 않는 완벽한 정신적인 사랑을 꿈꿔 왔다면

언닌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랑을 꿈꿔왔었다.

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냄새를 싫어하는 반면 언닌 그런 면에서는 관대하여,

사람의 냄새를 당연시 여기며 나름대로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었다.

 

난 주어진 내 환경에서 무리수를 두지 않으며 나를 환경 속의 객체로 맞추는 편이었다면

언니는 주어진 환경과 자신을 조화시켜 자신이 그 환경의 주체로서 인생을 살아갔다.

 

나는 겁이 많아 현실을 재어보고 무리수 되는 일엔 절대 몸을 사리는 것처럼 살았다.

하지만 언니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그 조심스런 겁 많음은 나의 확신이 서지 않았을 때 그러했다는 것을...

내가 확신하는 일엔 누구보다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 있었던 공백은

어쩌면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아끼면서도 공유할 수 없는 각자의 색깔의 세계가 큰 강이 되어

서로의 안부를 전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안부 정도를 확인하였는지 모른다.

 

아니면 남도 아닌, 혈육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의 관계 설정이 부담스러워 차라리 멀리서 지켜만 보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언니에겐 친동기간이 있었는데 그 동생들의 존재가 나로 하여금 충격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모순의 한 단면이었다.

그랬다. 난 나의 이름 없는 자리가 많이 힘들었다.

이것이 어쩌면 앞서의 이유보다 더 솔직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십 수년의 공백을 두고 만났지만 서로에게 익숙한 것에는 조금도 손상이 가 있지 않음을 보았다.

언니를 통해 나의 옛 모습을 더듬으면서 나의 얼굴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사람에게 인간적인 면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 기억에서 정도 나고 사랑도 나는 것 같다.

그 기억이 십년 넘는 세월의 공백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언니를 통해서 물밑 빛에 의해 굴절되어 보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정리해보았다.

 

현실을 인정하기 아파서 도망치던 어린 나의 모습

아파서 들여다 보기를 애써 외면하던 시간들 모두 자기 중심적인 아기 사랑이었지만

나름대로는 실 한오라기 걸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었기에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린아이 같은 사랑법이었다.

 

바보같이 아파하며 숨어버리다니 ...

자기 자리란 있는 자리가 자기 자리이고 내가 언니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 그 의미가 자리인 것을...

 

삼차원적인 사랑이 어찌 이차원적인 관계 설정에서 갇혀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틀 속에서의 구속에서 문자적인 안정감을 가지려 하였던 나의 어린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 어린 사랑 역시 순수한 사랑이었기에 십 수년이 지나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나 보다.

 

사랑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보석임에 틀림이 없나 보다. 

 

 

언니와 함께 했던 시간과 기억들이, 사랑과 우정의 진정 가치있는 것들로 남아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며

앞으로도 나와 스칠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런 사랑과 기억들을 만들어

이 땅에서의 내 생명이 소멸되어 갈 시간,

그 기억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