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시작된 것을 알았지만 눈을 감고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눈을 떠보니
어제처럼 앞산에 안개가 아침 햇살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도 빛은 가릴 수 없었는지 안개 위에 환한 기운이 있는 것이 왠지 신비스러운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하늘 위로 까치가 한 마리 그러더니 두 마리 세마리가 따라 날아 올랐다.
발코니 앞 노란 국화와 잘자란 관음죽의 파란색이 눈에 들어오면서 일어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이 된 것이다.
딸애를 깨우고 아침 준비를 하는데 딸애가 울고 있었다.
항상 씩씩하고 밝은 아이가 그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래서 물어보니 그냥 울고 싶다는 것이었다.
며칠동안 연휴로 느슨해졌다가 어제 부터 평소의 일상으로 돌아오니 힘이 들었나 보다.
밤 12시 40분이 되어서야 돌아와서는 밤에 그렇게 재잘대더니 잠이 턱없이 부족하여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등교 시간도 있고 자기 감정에 그렇게 노출되어 계속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서
그 아이의 상태에 별 관심이 없는 듯 무시해버렸다.
심통을 내는 것 같기에
상황이 좋을 때 안 좋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나오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인 거다.
쏘아 부치며 시동을 걸었다.
학교 앞에 내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꼭 그렇게 인정머리 없이 대응해 주어야 했었느냐고...
내 어릴적에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다.
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6년, 3년, 3년, 모두 개근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하늘이 핑핑 돌정도로 아파도 모진 우리 어머니 날 업고 학교에서 한 시간이라도 수업을 받게 하고 조퇴를 시켰으면 시켰지 결석이란 없게 하셨다.
난 그때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도 당신의 생각의 틀이 더 중요해서이라고
마음 속으로 내 어머니를 원망해 보던 때도 있었다.
내 어머니의 경직된 사고의 틀이 갑갑해 괴롭던 때도 있었다.
내가 엄마를 닮았나?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아니다,
부모 밑에서 자기 관리를 배우지 않으면 어디서 하겠는가?라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답이 없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약국 문을 열었다.
마음 속이 소란스런 아침이었다.